창을 열며(삶이 보이는 창 121호 발행인 글)
창을 열며
참으로 혹독한 봄입니다.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보다 거리가 휑합니다. 따뜻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고 새순이 돋는 것을 보니 엄동설한 이겨내고 만물이 생동하는 자연의 순환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숨다운 숨을 쉬고 먹거리와 정담을 나누어야 하는 인간의 대지는 여전히 얼어붙어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신조어가 마법의 주문처럼 마음대로 인간세상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역병이 창궐하나 특효약은 없고 히포크라테스와 화타의 후예들이 우선 급한 대로 내놓은 긴급처방입니다. 저 ’ 물리적 거리두기‘가 충격적인 시대의 유일한 처방이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마스크라는 재갈에 물리고 맥없이 발이 묶였습니다.
그래도 우선 약 없는 역병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 사이의 부대낌은 자제하되 마음은 한결같아야겠습니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선생님의 엄한 구령에 따라 두 팔 벌려 앞뒤로 나란히 좌우로 나란히 하지만 마음은 하나같이 즐거운 놀이였듯이 그렇게라도 하면 어떨까요? ’ 간격은 띄우고 마음은 가까이‘하면 좋겠습니다. 물리적 거리는 유지하되 마음은 이웃과 하나 되는 ’따로 또 같이’ 공동체적 가치를 다시 고민하고 생활 속에서 끈끈해졌으면 합니다. 당장의 위기도 극복하고 앞으로 더 심한 형국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지난 시간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뒤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물질 만능, 인간 경시의 모진 풍조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자본주의가 몇 백 년 동안 전파한 자본 팬데믹의 극복은 여전한 우리 삶터의 구조적 과제입니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을 위해 무심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시간을 ‘우선멈춤’하게 되었으니, 이 기회에 누군가를 염려하여 자신의 매무새를 가다듬는 기회로 삼으면 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게 변하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는 생지옥처럼 허망하게 가족을 잃는 상실의 봄, 노동자들은 일자리에서 내몰리는 공포의 봄이지만 ‘사회적 연대‘로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요.
미증유의 사태라 가늠이 쉽지 않지만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물리적 간격은 두고 마음의 간격은 좁히는 인간 공동체의 지혜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선인들의 옛말은 주역으로만 전승되는 것이 아님을 『삶이 보이는 창』을 통해 확인하고 싶습니다.
충격과 불안이 극대화되는 시대의 처방은 ‘사회적 연대’ 뿐입니다. 저희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님들의 삶터에 빠른 시일 내에 훈풍이 불어오기를 소망하며 여러분들의 꿈도 응원할 것입니다. 온갖 그리움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의 그린비네에서 세상 바라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예리하지만 따뜻한 시선의 창이 항상 열려 있을 것입니다.
새싹이 돋아나고 온갖 꽃들이 수줍게 피어나는 봄천지에 인간의 봄이 더디 오지만 끝내 오고야 말 그 봄을 여러분과 함께 간절한 심정으로 기다립니다. 우선 어디선가 머뭇거리는 2020년 봄소식 대신에 전령사로 ‘삶이 보이는 창 봄호’를 전해드립니다.
(202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