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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 그림 읽는 남자 Feb 01. 2023

들여다본 전시. 1 / 서울대박물관 기획특별전.(1)

붓을 물들이다(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_산수화 편.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위창 오세창이 편집한 <근역화휘>를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는 2002년 《근역화휘, 근역서휘 명품선》 이후 약 2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전시이다. <근역화휘>는 산수화, 문인화, 영모화, 화훼초충 등 조선 초기 근대 초입까지의 총 67점의 그림이 실려 있다. 더불어 <근역화휘>는 조선의 화가를 총망라한 화첩이자 우리 미술사의 보고(寶庫)이다. 전시는 작년 10월 1일부터였지만 뭐가 그리 바빴는지 결국 전시 마지막 날 다녀왔다. 전시는 끝났지만 감상의 여운이 깊어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산수화, 문인화로 나눠 차례차례 소개한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


1. 문인의 이상을 담은 산수화_관념산수화.


 <근역화휘>의 첫 번째 부분은 산수화로 총 18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수화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연의 경치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단순히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 그림으로 볼 수 있지만 문인들의 시각에서는 다르다. 특히 조선의 문인과 화가들은 자연을 그림으로서 내면(心象)이라는 정신수양을 쌓았다. 더불어 산수를 감상함으로써 복잡한 세상을 벗어나 은거하겠다는 무위(無爲)를 심회(心懷)하였다. <근역화휘>에 나타난 산수는 조선의 문인과 화가들이 어떻게 자연을 담아내었는지 시기별로 확인할 수 있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1. 안견의 산수도. 2. 이징의 니금산수.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3. 윤두서의 송하위기도. 4. 윤덕희의 산수도. 5. 윤용의 증산삼청도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6. 강세황의 산수도. 7. 최북의 산수도.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8. 허련의 방예운림죽수계정도. 9. 장승업의 방황학산초추강도. 10. 안중식의 계산추의도

  조선 초에서 중기의 산수화는 안견(그림. 1)의 것으로 전해지는 산수와 이징(그림. 2)의 그림으로 배치되어 있다. 세 그림 모두 수량이 적어 귀한 그림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안견의 것으로 전해지는 <산수도(그림. 1)>는 조선 초기의 산수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그림이다. 매우 작은 그림이지만 자세히 보면 산악을 윤두준(雲頭皴)과 단선점준(短線點皴)으로 나타나있으며 편파 구도로 배치하였다. 이는 북송 화풍인 곽희(郭熙)의 화법을 따른 것을 알 수 있다. 이징의 <니금산수(그림. 2)>는 흑건에 금니로 매우 정교히 산수를 그려내었다. 그림의 재료와 구도를 봤을 땐 화려하여 자칫 장식적인 그림으로 볼 수 있지만, 안견 화풍과 당시 유입된 절파화풍(浙派畫風)을 능숙히 절충하였다.


 다음으로 윤두서, 윤덕희, 윤용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활동한 문인이자 3대를 이은 해남 윤 씨 집안의 화가들이다. 중국으로부터 최신 장르가 할 수 있는 남종화(南宗畵)가 유입되는 시기로 조선의 산수화가 꽃을 피운 시대라 할 수 있다. 윤두서가 그린 <송하위기도(그림. 3)>는 산 능선의 준법과 소나무의 가지는 앞전 시대의 화풍을 답습하고 있다. 이전 시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경관을 배치한 구도와 소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선비와 같은 인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중국에서 수입한 화보를 통하여 남종화풍(南宗畵風)을 따른 것을 보여준다. 윤덕희의 <산수도(그림. 5)>는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風)의 특징인 삼원구도와 미점(米點)과 안개로 표현된 산세가 여실히 나타나있다. 손자 윤용 역시 <증산 삼청도(그림. 5)>를 통해 집안의 가풍이자 당시 문인들의 취향인 남종화(南宗畵)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윤덕희, 윤용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강세황과 최북 <산수도(그림. 6, 7)>에서도 남종화(南宗畵)의 형식이 엿볼 수 있다. 강세황의 경우 담채를 담백히 올려 그림의 감흥과 문인의 격을 올렸다. 최북은 직업 화가임에도 강세황처럼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대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선말엽의 경우 추사(秋史)의 영향으로 명말 청초 유행한 복고화풍인 원대산수화풍을 수용하게 된다. 이전시기는 남종화의 새로운 도약이었다면 이 시기는 남중화의 복고주의라 할 수 있다. 허련의 <방예운림죽수계정도(그림. 8)>는 예운림이라는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인 예찬倪瓚)의 죽수계정도를 모방한 그림이라는 뜻으로 제목부터 복고주의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은 갈필(葛筆)과 적묵(積墨)으로 예찬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갈필의 피마준으로 바위와 산세를 나타내는 것은 황공망의 화법도 같이 겸하고 있다. 장승업도 허련처럼 <방황학산초추강도(그림. 9)>라 하여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인 황공망을 방하였다. 허련의 경우 고전적 화법을 숭앙함으로써 문인의 사의(寫意)를 얻으려 했다. 반대로 장승업은 직접화가로서 경우 당시 허련처럼 추사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애호를 충실히 따른 것이다.  안중식이 그린 <계산추의도(그림. 10)>은 스승 장승업처럼 말엽의 애호층이 근대초기까지 이어지는 영향과 더불어 국권이 침탈된 시기임으로 허련과 같은 문사(文士)의 상심(傷心)도 있었을 것이다.



2. 관념이 아닌 실경의 산수화_겸재 정선.


  위창 오세창이 편집한 <근역화휘>의 산수화는 관념산수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수화는 크게 문인의 이상을 나타낸 관념산수화와 실제의 경관을 그린 실경산수화로 나뉜다. 문인들은 실제의 경관을 그린 그림보다는 관념산수를 지향하였다. 그 이유는 북송대 문인인 소동파가 답하였는데, 그는 '그림을 형사만으로 논한다면 그 안목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論畵以形似 見與兒童鄰).'라 밝혔다. 즉, 자연이라는 사물의 형태보다는 자연의 법칙과 조화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학의 가치관과 밀접하여 문인들은 성리학의 이념이 실현된 산수인 관념산수를 선호하게 되었다. 조선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건국되었으니 조선의 문인과 화가들이 관념산수화를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종문인화가 꽃을 피운 18세기 무렵 조선 산수화의 거목 겸재 정선이 나타난다. 정선은 단순히 우리의 명산대첩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것은 아니다. 당시 조선의 문인들이 지향 남종화의 형식으로 실제 경관을 그렸기 때문이다. 다른 화가들의 관념산수화보다 다양한 실경산수를 정밀하면서도 간결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사의성(寫意性)까지 구성되어 있었다. 정선의 영향으로 이후 등장하는 강세황, 심사정, 김홍도, 이인문 등도 남종화풍이 묻어나는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그만큼 정선이 조선 후기 화단에 끼친 영향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9. 정선의 만폭동도. 10. 정선의 혈망봉도

 <근역화휘> 전시에서 소개된 정선의 그림은 총 4점으로 그중 2점은 금강산을 그린 작품이다. 겸재 정선하면 당연히 금강산 그림을 떠오를 것이며 금강산의 경관을 주제로 한 그림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이번 <근역화휘> 전시에서 소개된 <만폭동도(그림. 9)>, <혈망봉도(그림. 10)>는 작은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정선의 화력이 잘 묻어나는 그림들이다. 먼저 <만폭동도(그림. 9)>를 보면 시원한 물줄기와 울창한 소나무 그리고 병풍처럼 늘어선 금강산의 산세를 한 화면에 나타나있다. 전체적인 색감은 맑게 담채를 올렸으며 짙은 먹으로 근경의 소나무를 처리하여 산세의 울창함이 돋보인다. 더불어 수직준과 미점을 교차하여 기세가 느껴진다. 그리고 근경과 계곡과 원경의 금강산 사이에 여백으로 안개를 넣어 경관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보여준다. <혈망봉도(그림. 10)>는 금강산의 일출봉 서쪽에 있는 암봉을 그린 것이다. 금강산의 봉우리를 수직준으로 빠르게 처리하여 가파르고 높은 암산(巖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수직준의 봉우리마다 미점준과 청록의 담채를 처리하여 푸른 금강산이라는 시각적 효과까지 그려 넣었다.


 이렇듯 겸재 정선은 산수화의 거목답게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를 관념산수화(觀念山水畵)처럼 다양한 기법을 통하여 사의성(寫意性)을 나타내었다. 그만큼 겸재 정선은 산수화라는 두 분야 모두에 두각을 나타낸 화가이다.



3. <근역화휘>의 산수화를 와유(臥遊)하다.


 이번 서울대학교 박물관 특별 전시에 소개된 <근역화휘>의 산수화는 전체적으로 화첩 크기의 작은 사이즈이다. 작은 그림에 과연 볼 것이 있을까 싶지만 그림 하나하나마다 시대와 화법과 주제가 다르다. 그만큼 위창 오세창이 <근역화휘>를 편집할 때 산수화에 많은 심혈을 기울인 노고가 보였다.  <근역화휘>에 나온 산수화를 조선의 문인과 화가들이 그린 관념산수화와 겸재 정선의 산수화로 나눠 전시한 것도 참 인상 깊었다. 산수화를 한 점 한 점 볼 때마다 종병이 말한 와유(臥遊)가 조선의 문인과 화가들에게는 이상향이라는 것을 느꼈다. 곽희는 「임천고치(林泉高致)」의 <산수훈(山水訓)> 에서 산수를 그릴 때 '가볼 말한 곳', '구경할 만한 곳', '노닐 말한 곳', '머물며 살 만한 곳' 이어 한다고 하였다. <근역화휘>에 나온 산수화는 이에 해당되는 산수화라 생각된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




참고문헌

1. 홍선표, 조선시대회화사론, 문예출판사, 1999.

2. 갈로 지음, 강관식 옮김, 중국회화이론사, 돌베개, 2010.

3.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서울대학교박물관 기획특별전), 서울대학교박물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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