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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 그림 읽는 남자 Mar 07. 2023

들여다본 전시. 1 / 서울대박물관 기획특별전.(2)

붓을 물들이다(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_사군자 편.



 저번 편은 오세창이 편집한 <근역화휘> 중 산수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꾸렸다면, 이번 편은 사군자로 이어가 보려 한다. 사군자는 문인화(文人畵) 중에서 화훼(花卉)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주로 매란국죽(梅蘭菊竹)을 고결한 군자(君子)에 비유해서 그림으로 나타내었으며, 중국 송원시대(宋元時代) 문인의 목회로 유행하여 문인화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 경우 고려시대 때부터 송원(宋元)의 영향으로 대나무와 매화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비록 그림이 없고 문헌에만 기록되어 있지만, 조선 이전 시대 때부터 그려왔다. 조선의 경우 15~17세기는 양반층의 문인 화가들이 매란국죽(梅蘭菊竹) 중에서 한 가지 화목을 간결하게 그리는 것을 추구하였다.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가 꽃을 피운 18세기는 여러 가지 화목을 다양하게 그리는 화가들이 등장한다. 19세기에서 근대 초기에는 기존의 양반 계층의 문인적인 요소가 아닌, 다양한 계층을 위해 장식적이고 화려한 화풍(畫風)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사실 사군자(四君子)라는 용어는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의 ‘조선미술전람회 규정’에 처음 등장하며,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 제3부에 「서예와 사군자」 별도 모집 및 전시를 개최하였다. 사군자(四君子)라는 용어가 보편화된 것은 근대 초기인 20세기 이다. 오세창이 <근역화휘>의 사군자는 산수화처럼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어 각 시대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

1. 매화_가지에 꽃피운 시정(詩情).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신(文臣)이자 서화가인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이라는 저술을 통해 매화가 가장 으뜸의 꽃으로 칭송하였다. 강희안 이외에도 조선의 많은 문인들은 매화를 향한 애착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1. 송민고의 묵매. 2. 이공우의 매화.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3. 조희룡의 홍매. 4. 오경림의 매화.


 17세기에 그려진 송민고의 매화(그림, 1)는 가지와 꽃을 담묵(淡墨)과 선염(渲染)으로 나타내어 매화가 유료하고 간결해 보인다. 일지매(一枝梅)처럼 가지가 곧게 위로 뻗어 군자의 기세를 연상시켜준다. 이공우, 조희룡, 오경림의 매화는 19세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송민고에 비해 색감과 가지 등 화법이 다채로워졌다. 이공우의 매화(그림, 2)는 꽃을 연붉은 담채와 비백(飛白)을 적절히 섞어 그림의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나무는 큰 줄기를 중심으로 곧게 뻗어 있어 조선 중기 매화의 양식을 조금이나마 계승한 것으로 보여진다. 조희룡의 매화는 다른 매화와 달리 홍매(紅梅)로 화면을 채웠다. 가지도 위가 아닌 아래로 뻗어 그림의 황홀경(怳惚境)을 더해준다. 오경 림의 매화는 청홍색의 꽃을 그리고 가지는 빠르고 날렵히 뽑아 마치 매화가 춤을 추는 듯하다. 이러한 구성이 다른 매화에 비해 그림이 자유롭고 신선함을 주고 있다.



2. 난초_그윽한 의취(意趣).


 15~17세대 때 난초는 매죽(梅竹)에 비해 호응이 낮았지만 18세기부터 다채롭게 그려지다가 19세기와 근대 초기는 묵란(墨蘭) 절정기를 맞이한다. 19세기는 추사 김정희의 영향으로 여항문인(閭巷文人)층이 다양하게 묵란(墨蘭)을 화단에 변화시켰다. 근대 초기는 추사의 영향을 받은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석파란(石波蘭)과 중국 청(淸)의 상해 화파(上海畫派)와 교류한 운미 민영익의 운미란(雲尾蘭)이 화단을 장식하였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5. 임희지의 난죽도. 6. 김정희의 묵란.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7. 정학교의 묵란. 8. 이하응의 선면묵란.


  수월한 임희지는 비록 중인이지만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와 교류할 정도로 18세기 화단에 입지가 있는 인물이다. 그의 묵란도(그림, 5)를 보면 왼편의 대나무는 곧고 오른 편의 난초는 수려하다. 더불어 대나무의 잎은 농담(濃淡)의 변화를 주고 난꽃은 잎의 좌우로 나란히 배치하여 수준 높은 경영위치(經營位置)의 격을 나타내었다. 가히 걸작이라 말해도 부족할 정도이다. 추사 김정희의 묵란(그림, 6)은 임희지에 비해 구성력이 다소 부족하지만, 난 잎의 당랑과 서미를 삼전법(三轉法)으로 쳐 서예의 필법을 완벽히 소화시켰다. 이는 평소 초서(草書)와 예서(隸書)를 쓰듯이 난초를 쳐야 한다는 본인의 주장을 그림으로 펼친 것이다. 정학교와 이하응의 묵란(그림, 7,8)을 보면 난잎에 굴곡을 주는 삼전법(三轉法)으로 변화를 줘 추사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3. 국화와 대나무_굳은 지조(志操)와 기세.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을 상징하여 많은 문인들이 벗으로 여겼다.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매화와 마찬가지로 국화를 1품으로 두었다. 그 밖에도 조선 후기가 되면 여러 품종의 국화를 기를 정도로 친숙한 대상이 되었다. 대나무는 매화만큼이나 그림과 시에 많이 등장한다. 곧게 뻗은 대나무의 형체를 군자의 지조(志操)로 비유할 정도로 문인들은 대나무를 군자(君子)로 여겼다. 그래서 시대마다 대나무만 잘 그려도 문인화가로 우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9. 허핑의 황국도. 10. 유덕장의 묵죽.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11. 신위의 묵죽. 12. 이정직의 묵죽.


 오세창이 편집한 <근역화휘>에 국화는 연객 어필의 황국도(그림, 9)이 유일하다. 그러나 연객 허실은 강세황의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묵객(墨客)으로 조선 후기 시서화에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렇기에 유일한 국화인 것이 더 보배롭다. 허필은 수묵에 연한 채색을 넣어 황색의 국화를 가볍게 그렸다. 가을 들판에 자연스럽게 핀 국화처럼 그림이 은은하고 담백하다. 허필은 간략한 필선과 구도 그리고 색감으로 가을을 나타내었다. 대단한 필체라 할 수 있다.


 유덕장의 묵죽(그림, 10)을 보면 탄은 이정의 묵죽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다분히 확인할 수 있다. 힘 있게 곡선으로 대를 뻗고 나머지 가지는 필선(筆)으로 쭉 뻗었다. 댓잎은 농묵(濃墨)으로 가지 사이에 얹어 대나무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비록, 이정의 화풍을 기반하였지만 대나무의 기상을 무리 없이 소화시켰다, 신위의 묵죽(그림, 11)은 앞서 본 임희지와 유덕장과 달리 무게감 보단 서정성을 담아내었다. 물기가 많은 먹으로 대와 잎을 처리하여 꼭 비온 뒤 대나무를 연상 시킨다. 이정직의 묵죽(그림, 12) 구도와 필법을 봐서 소치 허련의 영향을 상당히 의존하였다. 그러나 다른 묵죽에 비해 서예적 느낌을 한껏 살려 서화일치(書畵一致)가 느껴지는 묵죽이다.



4. <근역화휘>로 본 문인의 아취(雅趣).


  산수화처럼 작은 화면의 그림으로 구성되었지만, 찬찬히 감상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더불어 시대마다 사군자(四君子)의 양식은 변화되었지만, 각 화훼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변화하지 않고 존속되었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정체성만큼은 변화되지 않는 것이 바로 문인, 그 자체라 생각된다. 옛사람들은 문인의 기질을 조금이나마 닮고자 자연물인 매란국죽(梅蘭菊竹)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림으로 옮긴 것이 아닐까 한다. 문인이 되고 싶었던 옛사람들의 부산물(副産物) 중에서도 가장 정수를 모은 것이 바로 <근역화휘>일 것이다. 



[자료사진 : 서울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





참고문헌

1. 홍선표, 조선시대회화사론, 문예출판사, 1999.

2. 이선옥, 사군자, 매난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 돌베개, 2011.

3. 서울대학교 근역서화징 도록, 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서울대학교박물관 기획특별전), 서울대학교박물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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