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언제나 너였어
엘라이에게 세상은 늘 회색빛이었다. 우울한 시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저 생기 없고, 따분하고, 정체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세계에 베라가 찾아왔다.
베라는 엘라이의 세상에 색을 입히고, 그의 침묵 속에 웃음을 더했으며, 그의 고요한 삶을 흔들어 놓았다. 그녀가 처음 그의 인생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낡은 자동차 보닛 위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우린 같은 깃털을 가진 새야. 함께 있어야 해."
엘라이는 그 말을 믿었다. 온 마음을 다해.
그러나 시간은 잔인했고, 사랑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베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관계가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는 그런 종류의 거리감이 아니라, 끝없는 바닷속에서 오래 헤엄친 사람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엘라이가 아무리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해도, 그녀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더는 못하겠어."
어느 날 밤, 빗소리에 묻힐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였다.
엘라이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야?"
베라는 시선을 피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변해가는 나를 네가 보는 게 싫어. 나를 구하려고 하지 마, 엘라이."
엘라이는 두 손을 꼭 쥐며 이를 악물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뭐야?"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쉬었다.
"날 이렇게 기억해 줘. 너무 늦기 전에."
엘라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가면, 나도 갈 거야."
베라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넌 정말 바보 같은 말을 해."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엘라이에게 단순한 연인이 아닌, 세상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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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네가 가면, 나도 간다
그녀는 한밤중에 떠났다. 침대 옆 탁자 위에는 짧은 쪽지가 남아 있었다.
"날 찾지 마."
엘라이는 텅 빈 방에서 눈을 떴다. 쪽지를 손에 쥐고 있는 손이 떨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건 꿈일까? 그녀가 곧 돌아올까?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몇 달이 흘렀다.
그리고 엘라이도 서서히 시들어 갔다.
그녀가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만 잊어야 해."
"이렇게 살아선 안 돼."
하지만 그는 상관없었다.
베라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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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빛이 사라지는 날까지
엘라이는 어느 추운 가을밤, 아주 먼 도시에서 그녀를 찾았다.
거리 한가운데,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그녀가 서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들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녀는 변해 있었다. 살이 조금 빠졌고,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그 눈빛—그 익숙한 눈빛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베라."
그녀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돌아섰다.
숨이 멎을 듯한 표정으로 그녀가 속삭였다.
"엘라이."
그는 말하고 싶었다. 묻고 싶었다. 비난하고 싶었다.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입에서 나온 말은 단 하나였다.
"넌 떠났어."
베라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후회와 안도가 뒤섞인 얼굴이었다.
"날 찾지 말라고 했잖아."
"상관없어." 엘라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떠났고, 나는 사라졌어."
베라는 얼굴을 찡그렸다. "넌… 날 기다리면 안 됐어."
한 걸음 다가가며 엘라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말했잖아. 네가 가면, 나도 간다고."
베라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엘라이, 난 망가졌어. 난—"
"알아." 그가 말을 끊었다. "그리고 신경 안 써. 나는 네가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너를 사랑해."
그녀는 손을 입술로 가져가며 숨을 삼켰다.
엘라이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살짝 건드렸다.
"이제 말해 줘. 내가 여기 남아야 해? 아니면, 우리 같이 떠날까?"
베라는 그를 바라보았다. 긴 시간, 깊이.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이 밤이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 그들은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날까지.
그들이 죽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