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중임제, 한국 정치에 독인가 약인가
최근 정치권에서 대통령 중임제 도입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줄이고,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통령 중임제가 과연 한국 정치 현실에서 실효성이 있을까?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1. 권력 집중과 독점 우려
한국은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통령이 행정부를 장악할 뿐만 아니라, 입법과 사법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임제가 도입되면 대통령이 권력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고, 권력 독점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국정농단 사태를 돌아보자.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이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며 국정을 농단했다. 만약 그들이 한 번 더 연임할 기회를 가졌다면, 권력의 사유화와 부패는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다. 한국 정치 구조에서 중임제는 ‘책임 강화’보다 ‘권력 연장’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2. 선거 후유증과 사회 갈등 심화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재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정치적 갈등이 극단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의 사례를 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둘러싸고 사회가 분열됐고,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 운동까지 벌어졌다.
한국은 이미 선거 때마다 심각한 진영 대결을 경험하고 있다. 만약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하면, 야권은 이를 막기 위해 ‘정치 보복’이나 ‘네거티브 공세’에 집중할 것이고, 선거 과정에서 국민 분열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정권 교체도 힘든데,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행정력과 국정 운영을 선거에 집중하면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3. 정책 연속성의 착각
중임제 찬성론자들은 “대통령 임기가 길어지면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중임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정책 연속성이 보장된다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부동산 정책이 윤석열 정부 들어 완전히 뒤집혔다. 이는 단순히 정권 교체 때문이 아니라, 정책 자체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중임하더라도, 임기 연장을 위해 여론을 의식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단임제에서는 “역사적 평가”를 고려한 정책 추진이 가능하지만, 중임제에서는 단기적인 인기 영합적 정책이 늘어날 위험이 있다.
4. 개헌 논의의 불순한 의도
대통령 중임제 논의는 ‘개헌’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헌 논의는 국민의 요구가 아닌,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추진되었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면, 결국 본인의 임기 연장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말 개헌을 논의하면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았다.
개헌은 특정 정치인의 필요에 따라 추진될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중임제는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한국 정치 구조 전반을 바꾸는 문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현실을 고려했을 때, 대통령 중임제는 정치 개혁이 아니라 권력 연장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결론: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국 정치의 문제는 대통령 임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구조 때문이다. 만약 정치 안정과 정책 연속성을 원한다면, 대통령 중임제 도입보다 권력 분산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 한국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임기를 늘릴 것이 아니라, 대통령제 자체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 중임제는 단기적으로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맞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한국 정치에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권력의 연장이 아니라, 권력의 분산과 책임성 강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