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민사1부(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2021다242185 물품대금 청구 사건에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계약의 준거법과 국제협약 적용 여부는 법원이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는 사항이라면서도, 해당 사건에서는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이하 ‘매매협약’ 또는 ‘CISG’)과 계약 자체의 해석만으로 물품대금 지급의 이행기를 확정할 수 있다며 원심 결론을 유지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법인인 원고가 러시아 법인인 피고에게 조립설비를 공급하고 그에 대한 물품대금 지급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피고는 “조립설비에 하자가 있어 시운전 완료확인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따라서 대금 지급기일이 도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과 러시아가 모두 매매협약 가입국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협약 제1조 제1항 및 제3조 제1항에 따라 매매협약이 이 사건 계약에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제거래에서 민법이 아닌 협약 규정이 우선 적용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사건에서는 법원이 준거법과 국제협약 적용 여부를 직권으로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당사자에게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2021다269388 등)를 재확인했다.
즉, 당사자들이 준거법에 관하여 별다른 주장을 하지 않았더라도, 단지 그 이유만으로 묵시적 준거법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고,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법적 심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심은 매매협약이 아닌 **우리 민법 제150조 제1항(불확정기한의 성취 방해 시 유추적용)**을 근거로 물품대금 이행기 도래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이 매매협약 및 국제사법 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점은 있으나, 매매협약 조항과 계약의 내용만으로도 이행기가 확정될 수 있으므로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국제물품매매협약(CISG)**의 적용 범위와 법원의 직권 심리 의무에 대한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한 판례다. 특히 국제거래에서 준거법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있을 경우, 법원이 소극적으로 당사자의 주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직권적으로 국제협약과 국제사법을 심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