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통신장비 유지보수 기사 유족의 손 들어줘… “극저주파·고주파·납 복합노출과 발병 인과관계 인정”
서울행정법원이 통신장비 유지보수 기사로 30년 넘게 근무하다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하며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재판장 강경표)는 고(故) B씨의 배우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2024구합50582)**에서 “피고의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고 2025년 3월 27일 밝혔다.
고 B씨는 1981년부터 2013년까지 약 31년간 주식회사 C 소속 통신장비 유지보수 기사로 재직했다. 지하 맨홀에서 전신주 통신선 정비, 동케이블 수리, 납을 이용한 접속부 방수 작업 등을 수행했으며, 휴대전화가 보급된 이후에는 업무 중 고주파 전자기장에도 노출되었다.
퇴사 5년 후인 2018년, **전이성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으로 사망한 그는, 이미 2008년과 2011년에 두 차례 뇌종양 진단과 수술·항암치료를 받았던 상태였다. 유족은 고인의 사망이 업무상 유해 요인에 의한 것이라며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며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먼저 “극저주파 자기장, 고주파 전자기장, 납 노출과 신경교종 간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결과가 상반된다는 이유로 인과관계를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RAC)가 극저주파 및 고주파 전자기장을 뇌종양 발병 가능성이 있는 ‘2B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으며, 실제 고인은 기준치를 초과하는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었고, **유전적 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희귀한 악성 뇌종양에 걸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납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도 있었고, 전자파와 납의 복합적·누적적 노출이 뇌종양에 상승작용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며 “업무와 사망 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고인은 31년간 극저주파 자기장, 고주파 전자기장, 납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이러한 유해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공단의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부지급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전자파와 화학물질 등의 장기 노출에 따른 직업성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한 의미 있는 사례로, 향후 직업병에 대한 판단 기준과 적용 범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