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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줬으면 그만이지

by 기담

숨겨진 거인의 삶, 진정한 나눔의 얼굴을 마주하다
『줬으면 그만이지』 서평

『줬으면 그만이지』는 “보이지 않는 기부자”로 살아온 김장하 선생의 생애와 철학을 다룬 기록이다. 전직 기자 김주완 작가가 쓴 이 책은, 단순한 인물 평전이나 미담집이 아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으려 했던 한 사람의 깊은 삶의 결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따라가며 "진정한 나눔"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다큐멘터리다.

김장하라는 이름은 언론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름이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교육, 인권, 여성, 예술, 지역사회 등 사회의 다양한 구석에서 번져 있다. 장학금을 받은 이들만 천 명이 넘고, 한약방을 운영하며 일군 막대한 자산은 국립대와 지역사회에 모두 기부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기부를 홍보하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책 제목처럼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소탈한 철학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책은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통해 김장하 선생의 인격과 철학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청첩장을 돌리지 않은 결혼식, 감사패조차 마다한 기부, 국민훈장 수훈을 거절한 일화, 학교에 자전거 타고 출근하며 이사장실을 없앤 이야기까지, 모든 장면이 김장하의 ‘숨김의 미학’을 보여준다. 명예도, 반대급부도, 이름 석 자도 바라지 않았던 그였기에, 오히려 그 나눔은 더 깊고 강하게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나에게 고마워하지 말고 이 사회에 갚으라"는 말이다. 단순한 미담을 넘어, 공동체 윤리의 근간을 묻는 무게 있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김장하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쓰는지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줬으면 그만이지』는 감동적이되 과장되지 않고, 따뜻하되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수많은 타인의 인생을 바꾸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책장을 덮고 나면,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김장하가 되어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이 책은 '부자'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가장 가난했던 이가 가장 넉넉한 손을 내밀었던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은 김장하라는 이름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거인일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남긴다. 이 시대, 진정한 영웅을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조용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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