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생명공학의 발달과 함께 인간 생식의 영역은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대리모 계약’이다. 즉, 어떤 여성이 타인을 위하여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대신 수행하고, 출산 이후 아이를 의뢰인에게 인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다. 이와 같은 계약은 오늘날 일부 국가에서는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지만, 우리 법원은 최근 판결을 통해 이를 명확히 무효로 판단하며, 자녀의 진실한 신분관계를 회복하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에도 자녀의 복리라는 한계를 설정하였다.
이번 2022므15371 판결은 대리모계약의 법적 무효성과 친생자관계확인의 소권 남용 가능성을 명시한 중요한 판례로, 인간의 존엄성과 아동의 복리라는 헌법적 가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에 대해 중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 대리모 계약의 무효성과 그 법적 근거
대법원은 대리모계약이 민법 제103조에서 규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리모계약은 여성을 단순한 생식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점에서 여성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둘째, 출산된 아이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동의 인격과 권리를 부정하는 행위로, 아동을 단순한 소유물처럼 다루게 된다.
셋째, 임신과 출산은 생물학적 과정 그 이상의 것으로, 산모와 태아 사이에 형성되는 정서적 유대관계는 인간관계에서 매우 본질적이고도 존중받아야 할 가치이다. 이러한 유대를 계약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단순히 출산한 여성이 아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합의 역시 무효라고 보았다. 해당 합의는 본질적으로 대리모계약의 일부이거나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친생자관계의 판단 기준 – ‘출산한 자가 모(母)다’
대법원은 모자관계에 있어 혈연과 출산이 일치하는 경우, 설사 그 출산이 무효인 대리모계약에 기초하였다고 하더라도 출산한 여성이 자녀의 ‘모’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모자관계가 부자관계와는 달리 임신과 출산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의하여 결정되는 자연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법 체계 하에서는 ‘출산한 자가 친모’라는 원칙이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인공수정이나 대리모 출산이라 하더라도 혈연과 출산이 일치하면, 그 여성이 바로 ‘친모’가 된다.
4. 진실한 신분관계 회복의 한계 – ‘자녀의 복리’라는 헌법적 기준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는 자녀와 부모 사이의 진실한 신분관계를 확정하기 위한 소송으로, 일반적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의 일환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같은 소송이라 할지라도 ‘자녀의 복리’에 현저히 반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소권 남용으로 보아 그 청구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여기서 자녀의 복리에 반하는지 여부는 단순한 경제적 이해나 법률적 효과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법률상 친자관계가 형성된 경위
현재의 법률상 부모와 자녀 사이의 정서적 유대와 실질적 양육관계의 존재 여부
판결로 인해 자녀 또는 기존 부모가 입을 심리적 고통과 법률상 불이익
원고가 이 소송을 제기한 경위 및 목적의 정당성
판결이 기각될 경우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과 그 심각성
이처럼 진실한 신분관계를 밝히는 것이 원칙적으로 정당하더라도, 그 법적 진실이 자녀에게 미치는 실제 영향이 결정적 고려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실체적 진실과 자녀보호 사이의 헌법적 긴장관계를 절묘하게 균형 맞춘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5. 맺으며 – 기술의 발전과 법의 책임
오늘날 생식 보조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기존 민법 체계에 큰 도전을 주고 있다. 법은 기술을 무조건 수용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과 아동의 복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기준으로 하여 그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단지 대리모계약의 무효를 선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신분관계확정 소송의 남용 가능성에 대해 실질적으로 경고하면서도, 진실성과 복리의 충돌을 정교하게 조율한 중요한 법적 판단이다. 나아가 법원이 가족법의 영역에서도 헌법적 가치와 사회적 현실의 조화를 도모하려는 노력의 한 단면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