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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성 군인 간 성행위 군기문란

by 기담

군형법 제92조의6과 동성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 ‘군기’와 ‘인권’ 사이의 균형을 묻다


1. 들어가며

2025년 4월 24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2022도15950)은 군형법 제92조의6, 소위 ‘군형법상 추행죄’의 적용 범위와 관련하여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본 판결은 동성 군인 간 자발적 성행위가 모두 군기 문란 행위로 처벌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헌법상 기본권인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조직이 지닌 특수성 사이의 충돌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성소수자 인권 보장과 군 기강 유지라는 두 가치 사이의 균형점에 중요한 법적 이정표를 제시하였다.


2. 군형법 제92조의6의 취지와 개정 경위

현행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 등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과거 '계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구 군형법 제92조의5를 대체한 것으로, 그 문언을 보다 중립적·포괄적으로 조정하였다. 특히 “항문성교”라는 표현은 이성 간에도 가능한 행위임을 전제로 하며, 과거와 달리 남성 간 성행위만을 지칭하는 개념은 아니다.

이처럼 규범의 문언 자체에서부터 특정 성적 지향을 처벌하려는 명확한 의도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동성 간 성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형사처벌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 취지다.


3. ‘추행’의 의미에 대한 변화와 시대적 재조명

‘추행’이라는 개념은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부도덕하고 혐오스러운 행위’로 인식되었고, 주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적 행위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성적 도덕관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변화하였고, 오늘날에는 동성 간 성행위 자체를 ‘추행’으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법적 평가가 정착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동성 간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전제 자체가 더 이상 시대적·사회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그러한 행위가 군기 문란 행위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침해의 정황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4. 보호법익의 이중성 – 군기와 성적 자기결정권

대법원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으로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둘째,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이 두 법익은 때로는 상충할 수 있다. 특히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동성 간 성행위가 있을 경우, 그것이 군기 자체를 구체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이상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는 단순히 형벌 법규의 축소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인도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이며, 인권 보장의 대상이라는 헌법 이념에 입각한 판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5.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한계 – 군기 침해의 구체적 판단

한편 대법원은 무조건적인 처벌 배제를 선언한 것은 아니다. 군기 확립의 필요성이 특별히 강조되는 상황에서는, 자발적 성행위라 하더라도 처벌 가능하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상명하복이 엄격히 요구되는 계급 간 관계


생활관, 복무지 등 공동체 규율이 직접 작용하는 공간


상대방의 동의가 실질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복무환경


등에서는 해당 행위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이 경우 군형법상 추행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즉, 장소, 관계, 환경 등 맥락적 요소에 따라 동일한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6. 맺으며 – 평등과 규율, 두 가치를 조화시키는 법의 과제

이번 판결은 성소수자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명확히 인정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형벌로 억압되어온 개인의 정체성과 인권을 복권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군이라는 특수조직의 규율과 기강 유지 필요성도 존중하였다.

이는 단순한 처벌의 문제를 넘어, 헌법상 기본권과 공동체 규율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려는 법의 고뇌와 노력이 엿보이는 판례이다.

앞으로도 군형법의 해석과 운용에 있어 이러한 판단기준이 성적 다양성과 군 기강의 균형적 조화를 이끄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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