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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인 허위 사실 공표

by 기담

정치적 표현인가, 허위사실 공표인가 –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을 둘러싼 긴장과 헌법적 균형


1. 들어가며

2025년 5월 1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25도4697)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두 헌법적 가치 사이의 경계를 새롭게 설정한 판례로 평가받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공직 후보자의 발언이 ‘허위사실’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구성요건에 대해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특히 대선 후보자의 대장동 및 백현동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아 유죄 판단을 내린 이 판결은, 정치적 발언의 자유에 대한 제한과 허위정보의 형사처벌 사이의 균형 문제를 재조명하게 만든다.


2. 쟁점 요약 – 허위사실공표죄와 표현의 의미 해석 기준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은 후보자가 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허위사실 공표’ 성립 여부 판단 시 다음과 같은 해석기준을 명시하였다.

일반 선거인이 표현을 접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삼고


발언의 전체 맥락, 사용된 어휘, 문맥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표현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발언을 지나치게 기술적으로 분절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유권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의미에 주목하라는 취지다. 특히 특정 주제에 대한 질문에 이어진 일련의 발언들은 ‘하나의 의미 단위’로 연결해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다.


3. 표현의 자유와 후보자의 책임 –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충돌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공직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 자유가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보장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다수의견은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이라 하더라도,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보다 엄격한 책임이 따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취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인의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의사결정이다.


후보자가 자신의 자질이나 경력을 왜곡하면 선거인의 판단이 왜곡된다.


따라서 공정한 선거를 위해 후보자의 표현은 더 높은 사실성과 책임성을 요구받는다.


반면 대법관 이흥구, 오경미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은 입장이다.

후보자는 선거과정에서 중심적 발언 주체로서 표현의 자유가 가장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유권자의 정보 판단 능력은 향상되었으며, 표현의 진실성 여부는 궁극적으로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


국가가 표현을 선별하고 조율하는 것은 국민 자율성과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다의적으로 해석 가능한 발언을 공소사실에 맞춰 단정하는 해석 방식은 형사법의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원칙에도 반한다.


이처럼 표현의 주체가 후보자일 경우,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해야 할지, 공정한 판단을 보장하기 위해 엄격하게 제한해야 할지에 대해 대법원 내부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4. 사실과 의견의 구별,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가

판결은 특히 어떤 표현이 ‘허위 사실’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상세히 밝혔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허위의 사실이란 진실에 반하고, 선거인의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구체성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다소 과장되거나, 세부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를 보았을 때 중요한 부분이 사실과 부합하면 허위라고 볼 수 없다.


문제된 표현이 후보자의 공직 적격성 판단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이러한 기준은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을 보다 정밀하게 제한함으로써, 정치적 표현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반영한 것이다.


5. 사례 분석 – 대장동 골프 발언과 백현동 협박 발언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다음 두 가지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로 판단하였다.

‘골프 발언’: 후보자가 대장동 실무책임자와 골프를 친 사실을 부정하면서, 마치 조작된 사진으로 의심을 받았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점. 실제로는 함께 골프를 쳤음에도 이를 부정했으므로 허위사실에 해당한다.


‘백현동 협박 발언’: 국토교통부가 용도지역 변경을 강요하거나 직무유기를 협박했다는 발언 역시, 관련 기록이나 사실관계에 비추어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허위사실로 판단하였다.


반대의견은 위 발언들이 모두 복수 해석 가능성이 있고, 사실인지 의견인지 모호한 표현이라는 이유로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죄 판단이 어렵다고 보았다.


6. 맺으며 –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호되어야 하는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향후 선거법 적용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특히 유권자의 알 권리와 정확한 판단을 보장하기 위해,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에 대해 보다 정밀한 사실 검증과 법적 책임을 인정한 다수의견은, 선거의 공정성 확보라는 민주주의 근본 원칙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적 표현을 형벌로 규제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표현의 해석에 있어 다의성이나 모호함이 존재할 경우 무죄로 보아야 한다는 원칙은 형사법 질서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판결은 공정한 선거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법적 긴장을 명확히 부각시킨 결정으로, 앞으로도 정치인 발언의 형사처벌 가능성에 대한 법적 논의가 지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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