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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아닌 촬영물, 성폭력처벌법 위반 아냐"

by 기담



2024년 5월 30일, 대법원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3 제1항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확정하며, '촬영물 등'이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동조 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2024도14039).

이 사건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성명불상 여성의 음부 사진을 보여주며, 마치 그것이 피해자 본인의 신체인 것처럼 말한 뒤, 이를 유포하겠다는 취지로 협박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안이다. 검찰은 피고인의 행위가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3 제1항, 즉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이용한 협박"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조항의 해석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해당 조항은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에 대해 일반 협박죄보다 가중처벌하는 특례조항이다. 여기서 '촬영물 등을 이용하여'란, 실제로 존재하는 촬영물 등을 협박의 방편으로 삼아 해악을 고지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이는 피해자에게 유포의 가능성을 인식시켜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을 요건으로 한다.

대법원은 이어, 이처럼 협박에 사용된 '촬영물 등'은 단순히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외형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촬영 대상이 피해자 자신이거나 최소한 피해자의 신체로 오인할 수 있도록 편집되었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피고인이 사용한 촬영물은 피해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제3자의 신체를 촬영한 사진이었고, 별도의 편집이나 조작 없이 단지 말로 피해자의 신체인 것처럼 가장한 것에 불과하였다. 대법원은 이를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으로는 볼 수 없다고 보았고, 원심의 무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며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번 판례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3 조항의 적용범위를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협박의 수단으로 '촬영물 등'을 이용하였다고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허위 진술이나 오인을 유도하는 말뿐 아니라, 촬영물 자체가 피해자와 관련되었거나 관련되었다고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편집이 이루어진 경우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는 성적 촬영물의 남용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유지하면서도, 형사처벌 범위를 과도하게 확장하여 표현의 자유나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침해하지 않도록 균형을 이룬 판단으로 평가된다. 특히 협박죄를 구성하는 '해악의 고지' 요소를 형벌 강화 사유인 '촬영물의 이용'과 연결짓기 위해선, 그 촬영물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실제로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부여한 것이다.

결국 이 판결은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등'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피해자 보호와 형법상 죄형법정주의 사이의 균형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으며, 향후 유사한 사안의 법적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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