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인가, 불가항력적 결과인가 – 저산소성 뇌손상 의료소송 판결을 중심으로
최근 울산지방법원에서 선고된 2024가합12763 사건은 환자가 수면내시경 도중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게 되면서, 의료진의 진료상 주의의무 및 설명의무 위반을 근거로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한 사례로,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판단의 경계와 의료진의 책임 한계를 다시금 짚어보게 하는 중요한 판결이다.
이 사건의 원고 A는 2022년 11월 건강검진 목적으로 피고 병원에서 위내시경 및 대장내시경을 순차적으로 받던 중 산소포화도 저하와 청색증 등의 증상을 보인 뒤 의식을 잃었고, 이후 광범위한 뇌손상이 확인되어 심각한 운동장애와 일상생활 전반의 기능상실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원고들은 내시경 검사 당시의 과실 및 사전 설명 부족을 이유로 병원을 상대로 9억 원 이상의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이 판결의 핵심은 의료진이 과연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 그리고 환자에게 ‘설명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먼저 법원은 의료진이 수면내시경을 시행함에 있어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수면유도제와 진통제를 사용하였고, 그 용량 역시 환자의 체격조건과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과다하거나 부적절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았다. 특히 피고 병원은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저하되자 즉시 산소 공급을 증량하고, 필요에 따라 길항제를 투여하였으며, 활력징후를 모니터링하면서 실시간 대응을 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어 심정지에 이르고, 응급실 이송 및 심폐소생술, 기도삽관 등의 응급처치가 시행되었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뇌손상에 이르게 되었는데, 법원은 이 같은 중대한 결과만으로 의료진의 과실을 추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수면내시경 시행 중 공기 주입에 따른 ‘공기 색전증’ 가능성이나 폐동맥 색전증 등, 의료진이 예측하거나 사전에 방지하기 어려운 원인에 의해 증상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의료진의 선택과 대응이 재량 범위 내에서 합리적이었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원고 측은 의료진이 호흡 억제 회복에 필요한 날록손을 먼저 투여하지 않은 점이나 브리디온의 부적절한 사용을 문제 삼았지만, 법원은 날록손의 경우 오히려 혈압 상승, 폐부종, 간장애 등 부작용 우려가 있어 임상에서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약물이며, 브리디온 역시 환자의 회복을 방해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와 함께 쟁점이 되었던 설명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법원은 환자가 이전에도 수면내시경을 받은 경험이 있었고, 피고 병원으로부터 사전 동의서를 통해 ‘저산소증 및 심정지 등의 드문 합병증’에 대해 설명받았음을 인정하였다. 설명의무의 기준이 ‘가능한 모든 위험을 구체적으로 나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통상적 위험에 대해 충분히 고지하였는지에 있다는 점에서, 피고의 설명은 법적 기준을 충족한다고 본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의료행위의 결과가 비극적이었다 하더라도, 그 경위와 당시의 대응 조치를 면밀히 살펴본 결과, 의료진에게 법적 과실을 인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의료사고는 의료와 법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영역으로,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료적 판단이 때때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판결은, 의료진의 대응이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을 경우, 결과가 나쁘더라도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법리 원칙을 명확히 재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이 판결은 의료기록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 점에서도 주목된다. 원고 측은 병원 기록의 일부가 사후 작성되었고, 자녀의 항의 이후 수정된 정황이 있다며 조작 가능성을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응급 상황에서는 실시간으로 완전한 기록을 작성하기 어려운 점을 인정하고, 수정 내용이 전체 맥락과 일치하고 로그기록으로도 보완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 역시 의료기관이 응급 상황에서 진료 기록을 보완하는 과정을 무조건 불신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의료진에게 과실이 없다는 판결이지만, 환자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신체적 피해가 남았다는 점에서 의료현장의 한계와 법적 기준의 경계를 동시에 돌아보게 한다. 향후 의료기관은 응급대응 프로토콜의 재점검과 설명의무의 실질적 강화, 그리고 응급상황 시 신속하고 명확한 기록 관리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유사 분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법은 결국 발생한 결과가 아닌, 그 결과를 피하기 위한 과정의 ‘합리성’에 근거해 책임을 판단하는 것임을, 이번 판결은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