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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태만 변호사 해고는 부당

by 기담

형식적 규율의 충돌, 실질적 타당성의 회복 – 서울행정법원 부당해고 판결이 남긴 과제

2025년 4월 25일 서울행정법원 제1부는 “법무법인 A가 소속 변호사를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이 적법하다고 보아, 이 판정의 취소를 구한 원고 측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2024구합1603 판결) 겉보기에는 단순한 부당해고 다툼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실제로는 전문직 종사자, 특히 변호사의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로펌 내부 규정에 따른 형식적 규율이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고, 그 사이에서 ‘해고’라는 극단적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한 정교한 사법적 판단을 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피고보조참가인인 변호사 B(이하 ‘참가인’)이 법무법인 A에 근무하던 중 일부 기일 불출석, 사건 인수인계 소홀, 재택근무 시간 미보고 등의 사유로 2023년 10월 20일 해고되면서 시작된다. 원고 측은 법인카드 사적 사용, 출퇴근 태만, 의뢰인과의 소통의무 위반 등 8개 징계사유를 들어 참가인을 징계해고 하였고, 참가인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자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일부 징계사유만을 인정하면서도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보아 부당해고로 판정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징계사유가 사실로 인정되더라도, 그것이 해고라는 중징계를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하고 반복적이며 고의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법무법인 A가 제시한 8개 징계사유 중 5개 항목(법인카드 사용, 근태, 의뢰인 소통 관련 등)은 ‘명확한 사용기준이나 지시 없이 부과된 규율’이거나 ‘직접적 입증 없이 해석된 정황’에 기초하고 있다며 이를 불인정하였다. 특히 “근무시간 변경 가능성”을 인정한 내부규정과 달리 참가인이 자율적으로 출퇴근을 조정한 행위가 ‘무단결근’으로 처리된 부분에 대해서는, 단순한 유연근무의 해석 차이로 인한 것이지 징계사유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실제로 인정된 제5~7 징계사유(기일 불출석, 인수인계 소홀 등)에 대해서도, “단기간·일회성의 부주의에 기인한 행위”에 불과하며, 해고 이전에 다른 징계전력이 전혀 없었던 점, 회사 내부 업무시스템의 착오나 휴가 승인 과정에서의 의사소통 미비 등 조직 내 시스템의 불완전성도 일정 부분 작용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해고라는 조치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단순히 참가인의 실수를 ‘문책’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징계권 행사가 적정한 절차와 실질적 이유에 기초해야 한다는 사법 판단의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재판부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이 참가인에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시하며, 해고 사유의 비중과 성격, 고의성, 반복성 여부, 조직 내 대응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였다. 이는 단순히 징계사유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해고’라는 최종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정성적, 실질적 기준을 우선시한 결과이다.

이번 판결은 특히 로펌과 같은 전문직 조직에서 근무하는 구성원들에 대해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내부 규정을 통해 근로자 개개인에게 지나치게 형식적 기준을 적용하거나 징계권을 남용하는 것을 견제하는 사법적 균형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비록 법무법인 A의 규정상 기일 엄수, 의뢰인 소통, 업무보고 등은 중요하게 강조되었더라도, 그러한 규범이 실제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석의 여지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근로자의 행위가 조직의 중대한 해악으로 직결되지 않는 한 해고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징계사유를 판단하고, 그것이 해고 정당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실무적 사례로서의 의의도 크다. 특히 중앙노동위원회가 판단한 것처럼, 일부 징계사유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 유지를 어렵게 할 정도로 중대하거나 반복적이지 않다면, 해고는 재량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판결은 단순히 참가인 개인의 부당해고 여부를 넘어서, 전문직 조직 내에서의 규율과 자율, 형식과 실질,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던진다. 비단 로펌뿐 아니라, 의료, 회계, IT 등 고도의 자율성이 요구되는 직종에서도 유사한 분쟁은 빈번히 발생할 수 있으며, 그때마다 핵심은 ‘해고가 과연 마지막 수단이었는가’라는 질문에 실질적으로 답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노동관계법과 판례는 점점 더 이러한 정교한 기준과 해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그 방향성과 기준점을 명확히 제시한 모범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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