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미보정, 언제까지 유효한가?
– 대법원, 항소장 인지 보정 기한에 관한 기존 입장 명확화
항소인이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인지를 붙이지 않은 경우, 법원은 이를 보정하라고 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지를 언제까지 보정해야 항소장 각하를 피할 수 있을까? 인지 미보정으로 항소장이 각하된 뒤, 뒤늦게 인지를 보완하면 그 각하결정은 무효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실무상 중요한 질문에 대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항소인은 원심이 항소장각하명령을 ‘성립’시키기 전까지만 인지를 보정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보정하더라도 각하명령은 유효하다”는 것이 이번 결정의 결론이다(대법원 2021마6542 판결, 2024. 6. 27. 선고).
이번 판결은 ‘보정의 시기’에 관한 기존 해석상의 불확실성을 해소한 중요한 결정일 뿐 아니라, 인지제도의 취지와 소송경제의 원칙, 당사자의 재판받을 권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관한 법리적·정책적 고민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이다.
사건의 배경 – 항소장 인지 미부착과 보정의 타이밍
이 사건에서 피고는 1심에서 패소한 후 항소하였으나, 항소장에 인지를 첨부하지 않았다. 이에 1심 법원은 인지 보정을 명하였지만, 피고는 보정기간 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같은 날 인지 미보정을 이유로 항소장을 각하하는 명령을 내렸고, 피고는 같은 날 뒤늦게 인지를 보정하였다. 이후 항소장각하명령이 피고에게 송달되었고, 이에 대해 피고는 즉시항고하였다.
쟁점은 다음과 같다: 같은 날 항소장각하명령이 성립된 후에 인지를 보정한 경우, 해당 보정이 유효한가? 즉, 항소장이 각하되기 전까지 보정이 완료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각하명령이 성립된 이후이므로 무효인지 여부가 문제 되었다.
대법원 다수의견 – "항소장각하명령 ‘성립’ 전까지만 보정 가능"
대법원은 명확히 밝혔다. 민사소송법 제399조에 따라, 항소인은 ‘항소장각하명령이 성립되기 전까지’만 인지를 보정할 수 있다고. 그 핵심 논거는 다음과 같다.
항소장각하명령은 법적으로 성립되면 효력이 발생하며, 이후에는 변경·취소 불가
전자문서로 된 명령은 사법전자서명이 완료된 때에 성립한다. 일단 명령이 성립되면 별도의 법적 근거 없이 이를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없으며, 항소인이 그 이후에 인지를 보정하더라도 그 흠은 치유되지 않는다.
법문상 보정기한은 ‘각하명령 성립 전까지’
민사소송법 제399조는 보정기간 내 보정이 없을 경우 “명령으로 각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법원이 적법하게 각하명령을 내렸다면, 그 이후의 보정은 소송법상 무의미한 행위로 평가된다.
소송경제 및 재판의 신속성 확보
인지 보정의 목적은 소송비용을 미리 확보함으로써 불필요한 재판비용 발생을 방지하는 데 있다. 각하명령 이후에도 보정을 허용할 경우, 항소인에게 소송지연의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며, 법원이 불안정한 절차에 묶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대의견 – “항소장각하명령 ‘고지 전’까지 보정 허용해야”
그러나 다수의견에 반대한 대법관들도 있었다. 대법관 오경미, 서경환, 이흥구, 이숙연 등은 항소인의 재판청구권과 형평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반대논리를 제시하였다.
형평과 비례 원칙 위배
단지 보정 시점이 항소장각하명령 성립 직후였다는 이유만으로 항소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과도한 제재이며, 항소인의 권리 박탈이라는 중대한 불이익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성립 기준을 ‘시각’이 아닌 ‘날짜’로 봐야
대법관 이숙연은 명령의 성립을 시(時) 단위가 아닌 일(日) 단위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결정문에서 “성립한 날”은 알 수 있지만, 그 “시각”은 명확히 알 수 없으므로 보정과 명령의 선후를 시간 단위로 나누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인지 납부가 이루어졌다면 보정 효과 인정해야
대법관 이흥구는 “항소장각하명령이 성립된 이후라도 즉시항고심이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 보정이 이루어졌다면, 항소심 진행을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인지의 목적이 비용 충당에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 인지가 납부되었다면 형식보다는 실익을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판결의 의의 – 소송절차의 명확성과 형식적 기준의 정착
이번 판결은 항소절차상 인지 보정과 관련된 시점을 명확히 규율함으로써 실무상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더 이상 ‘언제 보정했느냐’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줄이고, “항소장각하명령이 성립하기 전까지만 보정 가능”하다는 원칙을 확립한 것이다.
동시에 이번 전원합의체 결정은 항소권 박탈이라는 결과의 중대성과 소송절차의 안정성이라는 가치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 사례이기도 하다. 재판청구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실무의 명확성과 경제성 확보라는 법정책적 목적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조화를 모색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