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에서 향기가 난다

썩어갈 몸이지만

by 어린왕자


이것도 모과



가을 햇살에 지친 모과가
툭 언덕 아래로 구르다
언덕 아래에서 꽃잎을 그러모아
하트를 만들던 구절초가
헹가래 치듯 모과를 안아버렸다
데구루루 구르다 구르지 못한 모과는
다만 슬프지 않다
못생긴 몸짓까지 받아준 고마움에
살짝 생채기만 내듯 얼굴을 긁혔다

긁힌 얼굴이 못나지도 않아서
주인장은 내게도 나눠준다

향기를 맡아보세요 향기가 나요

더 이상 모과는 못나지 않았다
떨어져 구르다 썩을 몸이지만
그는 내게로 와서 향기를 내뿜었다

이것도 모과


구르다 구르다 썩어갈 몸이건만

어디서 굴러도 그는 향기롭다

다만 밟히지만 않으면

아직 쓸 만하지 않을까

모과는 내게로 와서 향기가 되고

그에게로 가서 그림이 되고

또 다른 그에게로 가서 그리움이 되리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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