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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Mar 27. 2024

엄마가 걸었을 이 길을

내 집에 갈래

  며칠 꽃샘추위보다 더 아린 추위가 엄습해 왔다.  분명 봄날씨는 아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난  오랜데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북풍이 틀림없다. 얼굴을 스치며 핥고 지나는 바람보다 가슴팍을 뚫고 들어오는 봄바람이 오늘 유난히 더 아리다.




 차를 타고 지나다닐 때는 알지 못했다. 도시락 가방 책가방을 들고 뛰어다녔던 비포장 도로의 이 거리가 도심의 공간으로 변할 줄은. 봄이 오면 벚꽃이 예쁘다 벚꽃이 예쁘다 꽃구경 가자며 이 거리로 나오게 될 줄 그땐 어떻게 알았을까. 비가 오면 경운기에 책가방 던져 놓고 물장난하며 걷던 길, 탈탈거리던 경운기는 저만치 멀어져 가도 우리는 금방 따라잡았다. 책가방을 싣고 가도 겁이 나지 않았고 책가방을 던져버려도 괜찮았다. 경운기 아저씨를 몰라도  책가방을 던졌고 알아도 던졌다. 동네 어귀 어디메 아저씨도 가방을 던져놓았더랬다. ~기 어디메쯤.


 운동삼아 걷기엔 조금 먼 거리다. 집에서 한 시간을 조금 넘게 걸으면 엄마가 살던 집에 도착한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관리 차원에서 서너 달에 한두 번 겨우 들른다. 지난여름 풀이 너무 자란 맨땅에 벌레가 득실거려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봐 대대적인 풀 뽑기를 하고 난 후엔 가질 못했다. 이제 시간이 흐르고 나니 고향이란 단어도 조금 물러지는 것 같다. 친구도  없고 아는 얼굴도 별 없다.  낯설지 않은 건물 몇 채만 예전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다.  오히려 외제차가 더 많아 익숙하지 않은 그림이  된 모습만 보인다.




 친구가 텃밭을 꿈꾼다. 하라고 등 떠밀었다. 땅만 줄 테니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반갑게 밀어붙인다. 흔쾌히 승낙한 친구가 오늘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주기로 한 날이다. 만나기로 하고 나는 걸어서 엄마 집으로 갔다.


 십 년을 걸어 학교를 다녔던 길이다. 예전의 그 길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도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산등성이는 그대로 대단지 아파트를 품고 병원을 품고 백화점을 품고 앉아 있다.  산 꼭대기에 올라 메아리 울려 퍼지는 놀이를 우린 또 얼마나 했던가.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하얀 병원복을  입고 아무도 모르게 병원을  나와 당신 집을 찾아간다고 엄마가 이 길을 걸었다. 병원에서는 당연 외출이란 걸 혼자 보내주지 않고 자식인 나마저 엄마집은 병원이야 하면서 세뇌를 시켰었다. 엄마는 그렇게 병원이 내 집이야 아니셨던가 보다.


 성한 다리로 직접 찾아가던 날이 얼마인지는 가늠할 수 없다. 집을 찾았어도 대문이 잠겨 있어 어찌할 줄 모르셨을 것이다.  집으로 가던 길에 오빠를 우연히 만났고 가슴 철렁이며 애써 눈물 감추던 오빠를 무심히 바라보았을 것이다. 들킨 엄마의 마음보다 어쩌면 혈육을 만난 반가움이 더 컸으리라 그저 짐작한다.



 친구가 땅을 뒤집어 꼴을 만들어놨다. 저곳이 엄마의 터전이었다. 상추를 심었고 가지를 심었고 화장실이 함께 했었다. 어릴 때는 저 땅이 엄청 커 보였는데 지금은 너무 작게 느껴진다. 당신 몸 하나 뉘일 곳이면 충분하다 했는데  들어가고도 남을 땅이다.


 친구가 정리해 놓은 저 땅에 가지 따던 엄마가 보이고 대문을 고치던 아버지가 아직은 있다. 들여다볼 부모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저 땅을 버릴 수 없나 보다.


#어린 왕자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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