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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제니 Sep 27. 2021

국제선은 처음이라

스물아홉, 처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엄마는 항상 미안해


마침내 다가온 출국날. 나는 지방에 살고 있어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면 하루 전 날 미리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인천공항이라니. 이전에 국내선은 제법 탔었지만 국제선을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엄마는 캐나다로 떠나는 딸을 배웅하기 위해 출국 전 날 밤 나와 함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시간이 워낙 늦어 그런지 문을 연 가게가 없어 근처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만 두 개 사들고 한산한 터미널 내부에 앉아 인천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는 그저 그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했다. 나는 스무 살이 된 해에 독립해 쭉 자취를 해왔기 때문에 엄마와 떨어져 지낸다는 것에 대한 슬픔은 이미 예전에 무뎌졌었다. 엄마 또한 그런 듯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서글퍼진 건 내가 인천공항행 버스를 타기 직전이었다.


'딸, 이거 엄마가 딸 주려고 모았어. 엄마가 이것밖에 못 해줘서 미안해.'


엄마가 가방에서 현금다발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만 원짜리 백장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담담하지만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엄마와 현금다발을 번갈아보며 이게 뭐냐고 물으니 사랑하는 딸이 처음으로 외국 가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고 그런데 뭘 해줘야 할지 몰라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현금을 뽑아왔다고 한다. 엄마...


나는 차마 그 돈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런 상황이 불편하고 마음이 아팠다. 여태 먹고 사느라 바빠 항상 일을 했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어 그 흔한 제주도도 한 번 못 가본 사람이 자식새끼 외국에 나간다고 아끼고 아껴 모은 돈 백만 원을 이것밖에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건네는 게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울지 않았다. 내가 울면 엄마도 울 것 같았으므로. 대신 장난스럽게 웃으며, "엄마 이걸 이렇게 주면 어떡해, 이거 어차피 가서도 못 써, 그냥 엄마가 가지고 있어." 했다. 엄마는 그러냐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어디 가서 돈을 바꿔야 하냐 묻길래 됐다고 다시 엄마에게 돌려주었다. 엄마가 나 주려고 몰래 모은 이 돈을 그냥 엄마를 위해 썼으면 했다. 시간이 지나서 나는 그 돈이 그대로 내 통장에 들어가 있음을 알았다. 하여튼 엄마도 참.


나는 울며 불며 떠나고 싶지 않아서 웃으며 "잘 다녀올게, 엄마." 하고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와, 딸." 다행히 엄마도 웃었다. 엄마가 다시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이미 내게 모든 것을 줬고 나는 엄마의 모든 것을 받았으므로.



국제선은 처음이라


이른 새벽 혼자 낯선 곳에 떨어졌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코시국이라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이전에 인천공항에 와 본 적이 있어야 뭘 알지 커다란 캐리어 하나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질질 끌고 텅텅 빈 인천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래도 그들은 나처럼 혼자는 아니었는데... 낯선 곳에 혼자라는 사실이 외로움과 동시에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자고 있는 인천공항 로봇

그래도 울지 않아, 난 어른이니까! 가장 먼저 화장실을 찾았다. 항상 낯선 곳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소화기관이 약해 긴장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항상 탈이 나서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다. 그나저나 인천공항은 정말 컸다. 끝과 끝이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멀어 보였다. 비행기 탑승 전까지 시간이 남아돌았던 나는 낯선 인천공항과 친해지고자 공항 내부를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다 만난 인천공항의 마스코트 에어스타. 직 근무를 시작하기 전(?)이라 그런지 에어스타는 자고 있는 듯했다. 아쉽다.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즈음 서울에서 살고 있던 지인 언니가 나를 배웅하기 위해 인천공항까지 달려왔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식당가로 가서 밥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도넛도 사주고 계속 사주고 "그만 사 줘, 언니."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계속 무언가를 사주고 해주고 싶어 했다. 아마도 나에게 친언니가 있었다면 딱 그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후 그녀와 한참을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고 그녀는 내가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게다가 그녀가 출출할 때 먹으라고 챙겨준 간식 꾸러미는 훗날 자가격리를 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됐다. 그녀가 챙겨준 간식 꾸러미가 없었다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두 번 다시는 에어캐나다 안 타


내가 선택한 항공사는 에어캐나다였다. 국내 항공사보다 조금 더 저렴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약 10~30만 원이 차이가 났기 때문에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낀 돈만큼이나 자존감, 자신감을 잃었고 잃은 만큼 자괴감을 얻었으니 말이다.


처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캐나다에 오기 전 꽤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던 터라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고 그들이 나누는 단순한 대화가 귀에 쏙 쏙 박혔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국경 간 이동이 제한되어 있어 항공기 내 좌석이 텅텅 비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승객들이 모두 두 자리 혹은 세 자리를 혼자 사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 되는 비행을 아늑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었다. 문제가 발생한 건 비행기가 이륙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승무원들이 자가격리 계획서라는 종이를 승객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종이를 받은 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펜도 없었거니와 영어로 된 종이에 영어로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당황스러운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승무원들은 여기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승객들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나와 조금 떨어진 앞쪽에서 중년 여성에게 유창한 한국어로 도움을 주고 있는 승무원을 보았고 이어 그녀가 내 쪽으로 오면 그때 도움을 요청해야지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녀는 천천히 걸어왔고 나는 손을 살짝 들어, "저 펜이 없어요. 그리고 이걸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했다. 그녀는 나를 한 번 보더니 영어로 빠르게 무어라 말한 뒤 비행기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게 뭐지? 얼떨떨했다. 나는 심지어 그녀가 뭐라고 한 건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내가 외국인도 아니고 방금까지 한국어도 잘했던 그녀가 한국어로 물은 나에게 대뜸 영어로 무어라 빠르게 말을 한 후 그냥 가 버리다니. 그때부터 영어를 못 알아들었다는 생각과 함께 외국에 나가면 같은 한국인끼리 영어 못하면 더 무시한다는 얘길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나서 내가 방금 혹시 무시를 당했나 하는 생각에 쿠크다스 심장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행기 뒤쪽으로 갔던 그 승무원은 금방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식사를 나눠줄 때 나타났다. 도대체 아까 뭐라고 한 걸까. 이미 다른 승객들이 자가격리 계획서를 다 쓰고 치울 동안에도 나는 아무것도 작성하지 못한 채로 고장 난 로봇처럼 눈만 끔뻑 끔뻑거리고 있었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밥이나 먹어야겠다 싶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식사를 나눠주던 금발머리의 승무원이 어떤 음료로 하겠냐고 내게 물었다. 갑자기 말이 안 나왔다. 꼭 생각 회로가 정지된 것처럼 머리도 안 돌아갔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버버 거리다가 "코, 콜라" 하고 답했고 승무원은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주룩 났다. "코, 코, 코, 코, 코크, 코크" 했다. 승무원은 친절하게 웃으며 내게 캔콜라를 건넸다.


이후 아늑하고 편안한 비행은 있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작성하지 못한 자가격리 계획서와 콜라를 달라는 말 조차도 영어로 내뱉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더욱 화가 났던 건 두려움에 말이 안 나와 그 누구에게도 다시 요청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뜬 눈으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억지로 눈을 감아도 밀려오는 불안감과 자괴감으로 잠을 잘 수 조차 없었다. 결국 자가격리 계획서는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까지 작성하지 못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곧 비행기는 착륙할 테고 내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서둘러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 앞좌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한국인 남성분인 걸 알았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고 나는 개미만 한 목소리로 "펜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는 흔쾌히 내게 펜을 빌려주었다. 문제는 펜이 생겼어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소심한 성격의 나는 혹시나 내가 그를 계속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이번에 그는 조금 심드렁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이거...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세요?" 내 물음에 그는 그냥 대충 이런 식으로 쓰면 된다고 하며 자신의 자가격리 계획서를 살짝 보여주었고 나는 잠깐 동안 볼 수 있었던 그의 자가격리 계획서를 토대로 내 자가격리 계획서를 작성했다. 마침내 내 속을 꽉 막고 있던 무언가가 탁 트이는 순간이었다.



내리기만 하면 됐었는데...


나에게 무심했던 한 승무원 덕분에 에어캐나다의 이미지는 아주 박살이 났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도 그녀는 멀쩡히 승객들을 향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만은 아니었다. 황당하다. 그녀는 왜 나에게만 매정했을까?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한국인일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는데 왜?


그냥 잊어버리고 두 번 다시는 에어캐나다를 타지 않으면 된다며 울컥하는 마음을 계속 다독였다. 곧이어 비행기가 착륙하고 승객들이 분주하게 하기를 하는 중에 나는 시국도 시국이고 복잡한 사람들 틈에 섞여 하기하는 것보다 조금 천천히 내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그냥 그때 사람들 틈에 섞여 내릴 것을...


어째서인지 갑자기 휴대폰 유심칩을 갈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온 얇고 가느다란 침을 이용해 휴대폰 유심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구멍에서 침이 헛돌았다. 침이 너무 얇아 구멍과 딱 맞지가 않았다. 당황한 나머지 억지로 힘을 주어 거의 뽑아내다시피 했고 참 야속하게도 그때 마침 쑥 빠진 유심칩이 내 힘을 못 이기고 튕겨 나와 포물선을 그리며 저 멀리 앞 쪽 좌석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아... 진심으로 그냥 내리자마자 다시 한국 갈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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