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제니 Oct 19. 2021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

우기가 찾아온 밴쿠버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2020.11.


10월을 지나 11월에 접어들자 밴쿠버에는 더욱 많은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방 안에 편안히 누워있을 때의 이야기이고 바깥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중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운동화가 모두 젖어서 말릴 틈도 없이 눅눅한 채로 신고 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캐나다의 국민 신발을 사기로 했다. 들어는 봤는가, Blundstone.


나도 캐나다에 와서 처음 들어본 브랜드인데 캐나다 국민 신발이라기에 캐나다 브랜드겠거니 했더니만 웬걸 호주 브랜드였다. 근데 이게 얼마나 국민 신발이냐면 캐나다인 10명이 모인다면 그중 한 7명은 이 신발을 신고 있을 정도? Gastown에 있는 Blundstone 매장은 갈 때마다 항상 줄을 서 있을 정도?


Blundstone 장화? 부츠?


하지만 기능성 신발이라 그런지 값이 저렴하지는 않다. 이 신발을 살 당시 300불이라는 거금에 잠깐 망설였으나 어차피 밴쿠버에서 살려면 장화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구매를 결정했다. 지인의 말이 옳았다. 이 신발은 산 후 겨울 내내 신고 다녔고 벌써 300불의 값어치는 하고도 남았다. 조금 무게가 묵직하지만 발목 위로 올라오는 사이즈를 골라서 발목을 딱 잡아주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신어도 안정감이 있었다.


신발도 새로 샀겠다, 찝찝하지 않고 쾌적한 발로 일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아? 그 마음이 쭉 오래갔으면 좋았을 것을. 연이어 비 내리는 날씨가 계속되고 할 수 있는 일이 마땅히 없어 일과 집을 반복하는 일상이 계속되자 캐나다 밴쿠버 살이가 금방 지겨워졌다. 기분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점점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비가 내리는 것도 싫은데 그 비 오는 날에 항상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는 버스는 더욱 싫었다.


비내리는 퇴근길


하루는 일을 마치고 혼자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비는 계속 오고 거리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버스는 늦고 괜히 자기 연민이 생기면서 서글픈 와중에 또 노래는 듣고 싶어서 슬쩍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음원사이트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놈이 야속하게 귀찮다는 듯 거절을 하는 것이다. 이미 나는 그때 서러움이 하늘을 찌른 상태였고 동생의 거절이 불씨가 되어 결국은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너는 누나가 노래 좀 듣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니? 내가 여태까지 너한테 뭐 바란 거 있어? 나는 너 해달라는 거 잔소리는 좀 했지만 그래도 다 해줬어. 너는 이게 뭐라고 안 해주니? 누나가 캐나다에서 힘들게 혼자 살고 있는데 노래도 못 듣고 불쌍하지도 않니? 여기 내 주변 사람들 다 한국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해준다더라!"


사실 이건 최대한 순화한 버전이고 실제로는 온갖 쌍욕을 섞어가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더랬다. 그러자 동생이 본인이 지금 출근 중인데 출근길에 욕을 들어야겠냐면서 더 매몰차게 나오는 것이다. 그때 심정은 정말이지 속에서 부글부글 울화가 치미는데 뭘 해도 분은 안 풀릴 것 같고 아무도 없는 어두운 버스 정류장에서 혼자 씩씩 거리다가 '됐다, 더러워서 안 써.'를 시전 했다. 하지만 우리 남매는 서로에게 져주는 법이 없고 이어 동생에게 'ㅇㅇ'이라는 답을 받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우산도 없어서 비까지 맞으며 올 기미도 안 보이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짜증 나는데 동생마저 마음을 몰라주니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기분이었다. 결국 나중에 좋게 좋게 음원사이트 아이디를 받긴 했다. 하여간 꼭 해줄 거면서 사람 피를 말려.



2020.12.


그렇게 어영부영 11월이 지나가고 12월이 왔다. 여전히 흐리고 비 오는 날이 계속되었지만 크리스마스에 연말에 큰 행사가 많은 달이라 그런지 마냥 우울하게 보내진 않았다.


풍경 맛집 아울렛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냈는데 그러다 틈이 나면 집주인 언니, 룸메이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같이 음식도 만들어먹고 밤하늘을 보며 저녁 산책도 하고 가끔 휴무가 맞으면 날을 잡고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주에 한 번은 집주인 언니를 필두로 모여 함께 영어공부도 했다. 


한 번은 다 함께 리치먼드에 있는 아울렛에 간 적이 있다. 때마침 해가 지고 있는 타이밍이라 하늘이 어찌나 이쁘던지 길가에 서서 한참 풍경 사진을 찍었다. 또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듯 아울렛 중심부에는 대형 트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앞에서도 셋이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겼다. 노스밴쿠버에서 리치먼드까지는 시버스를 타고 다시 스카이 트레인을 갈아타고 제법 먼 여정이었지만 셋이 함께라서 그런지 지치지도 않고 마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루는 우밴유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장식한 집들을 구경 다녔다. 차가 있는 친구가 있어서 덕분에 랭리, 써리, 코퀴틀람 등 넓은 범위로 다양하게 다닐 수 있었다.


당시 구경다녔던 집 중에서


다양한 집들을 구경하고 다닐수록 밴쿠버 사람들 크리스마스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그중에서는 진짜 모든 것을 쏟아부었구나 싶은 집도 있었고 라디오 주파수를 연결하면 집주인이 설정해놓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집도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감탄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전기세가 감당이 될까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들었다. 확실치 않지만 제일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으로 선정이 되면 1년 전기세가 무료라는 보상이 주어진다고 한다. 뭐, 그렇다면 한 번쯤은 해 볼 만 한데?


크리스마스에 홍대 포차 국물 닭발

언제나 연말이 그렇듯 12월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캐나다 지인 언니와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캐필라노 흔들 다리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아버려서 급히 일정을 변경했다. 이름난 닭발 킬러인 나는 밴쿠버에 와서도 언제나 늘 닭발, 닭발 노래를 불렀고 마침 일정이 없어진 우리는 닭발을 먹기 위해 밴쿠버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가장 서양스러운 국경절에 매우 한국적인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사느라 바빠 자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해 줄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다. 언니는 기껏 나를 캐나다로 오게 해 놓고 잘 챙겨주지 못했다며 미안해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먼 타국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기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언니와 저녁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와서는 룸메이트와 크리스마스의 밤을 함께 했다. 그녀가 준비한 안주와 술을 마시며 Merry Christmas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서 뱅쇼를 마셨던 이야기를 해주며 코로나가 끝나면 다음번 크리스마스에 함께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서 뱅쇼를 마실 것을 약속했다.


밴쿠버에서의 2020년 마무리는 함께하면 즐거운 사람들과 조금씩 추억을 만들면서 보냈다. 처음 시작은 현실도피였고 다음은 버티기였던 나의 '스물아홉'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마침내 끝이 보이고 있었다.




(살짝 추천해보는 당시 내가 주야장천 들었던 곡, 커피소년-내가 니편이 되어줄게: https://www.youtube.com/watch?v=Zt1KtUJjUrQ)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밴쿠버의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