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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자 한다면 (3)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은

by 제이

병원을 조금 일찍 찾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는 다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신체적 증상보다 견디기 힘든 건 내 투지와 삶에 대한 의지를 깎아먹으려고 하는 나약한 마음이었다. 나는 점점 삶을 포기해가고 있었다. 분노와 억울함을 조절하려 들지 않았다. 세상을 향한 나의 불평불만은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이 나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는 마음에 여기저기 투정을 부리고 다녔다. 영화나 미디어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온하고 즐겁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죽을 위기 앞에 서 있는 이들 중 대부분은 극심한 공포와 불안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조차 힘겨워한다.


그 즈음 아버지에게 차를 물려받았다. 고급 외제차이지만, 여기저기 긁히고 쓸려 보기 흉하고, 여러 번의

사고 때문에 잔뜩 고장이 나 있는 차였다. 내 어린 시절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어머니가 타던 차이기도 하였다. 여행을 다녔다. 바다를 보고 도로를 타며 정처없이 여기저기 떠났다. 나는 운전을 험하게 하는 편이었다. 투병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차의 엑셀을 밟을 때면 조금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는 인천에 숙소를 잡고 놀러갔다. 마침 근처에서 Y대학교 캠퍼스 기숙사 생활중인 친구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찬구를 통해 스무살의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마침 휴학 중이었던 나는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그 친구와의 만남을 이어갔고, 연인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고작 스물 셋의 나이에 큰 병을 얻게 된 내가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순 있을지. 혹시라도 이런 내가 별로인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지. 나라는 존재가 짐이 되진 않을지.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함께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세상의 밝은 면을 먼저 보고 찾아내는 그 눈은, 내가 가지고 싶었으면서 동시에 내가 가지지 못한, 어쩌면 평생 가지지 못할 것이었다. 허무와 절망, 비관과 분노에 찌들어버린 나와는 다른 희망적이고 활기차며 맑고 순수한 그 마음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욕심이 생겼다. 함께하고 싶다. 내 삶의 시간이 그녀와 함께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욕심이 미약하게나마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되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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