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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자 한다면 (2)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다

by 제이

의병전역 대상자는 국군병원에서 의무조사를 받게 된다. 의무조사는 1차와 2차로 나뉘며, 1차에서 의무조사를 가결받으면 ‘전역 전 휴가’의 형태로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이후 2차 가결이 이루어지면 전역처리가 되며, 문자로 이를 통보받으면 그때부터 행정상의 신분은 민간인으로 전환된다. 나는 10월 말 경에 1차 의무조사가결로, 전역 전 휴가를 받고 귀가한 상태였다.


투약치료 초기, 몸이 약물에 적응하지 못해 온갖 부작용에 시달렸다. 가장 심한 것은 저혈압이었다. 누워있다가 일어서자마자 머리에서 피가 빠지는 불쾌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어두워졌고, 어지러움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소화기관에 피가 돌지 않아 식욕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하루 식사량이 밥 두 숟가락 정도에 불과한 날도 더러 있었다. 기운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천천히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CRT 시술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나이 스물 셋에 가슴에 기계장치를 달고 살아가야 한다니. 나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진료 결과, 희소식이라면 희소식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희미하게나마 약물에 반응이 있다는 것이었다. 심실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고, EF가 미량 개선되었다. 두 번째는 CRT 시술이 부적합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심전도상 LBBB, 즉 좌심실로 가는 전도신경이 끊어진 것으로 진단받았다. 그러나 협진 결과, LBBB가 아닌 WPW 증후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전문용어는 차치하더라도, 나는 가슴팍에 당장 기계를 달 필요가 없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이미 안도하였다. 저혈압 증세를 막기 위해 약 용량을 조금 줄였다.


여전히 심장은 두근거리고 마음은 불안했지만, 나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삶으로 복귀했다. 그 즈음 물려받은 차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정처없이 고속도로를 달려 바닷바람을 쐬며, 삶을 돌아봤다.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내가 놓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심부전 약물치료의 1차적 목표는 완치가 아닌 진행의 억제와 증상의 개선이다. 나는 죽음을 유예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발버둥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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