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려고 하고 있었다.
기수환영식을 앞두고, 3월에 있었던 개강총회의 기억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대학생들에게 개강총회를 떠올리라고 하면 형식적인 행사 이후 술을 진탕 마시는 뒷풀이를 떠올릴 것이다. 솔직히 개강총회의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 하고 다녀라, 유도복은 어떻게 관리해라 등 귀찮은 규칙들과 이해할 수 없는 학과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코로나 펜데믹이 완전히 종식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학과 단위의 뒷풀이는 없었다. 개강총회가 끝나고 안면을 튼 한 동기의 초대로 근처에서 나까지 네 명이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술을 잘 하지 못하지만, 취한 게 티가 나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서 태강이를 처음 만났다. 정 반대의 성격을 가졌지만 나를 잘 따르고, 의외의 부분에서 잘 맞는 태강이와는 지금까지도 오래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주량을 몰랐던 태강이는 술을 정말 좋아했고, 내가 취한지도 모르고 계속 술을 권하였다. 분위기에 휩쓸려 계속 술을 먹은 나는 중간중간 계속 바깥의 외진 하수구에서 구토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은 짓이었다. 안 받는 술을 거절하거나 분위기를 맞추며 몰래 술을 빼는 기술은 나중에야 배우게 되었다. 옆자리에 동기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우연찮게 수다를 떨며 번호를 교환하기도 했다.
그 이후 나는 천천히 학과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고, 많은 동기들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아무런 주관도 없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라면 마냥 좋아 함께했던 것 같다. 특유의 입담과 상대를 편하게 해 주는 성격 덕분에 나는 꽤 사람들과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간간히 캠퍼스투어 친구들과도 만났지만 서로의 사정과 바쁜 스케줄에 치여 점점 만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아직도 후회한다. 그때 학과에서 거리를 두고 소중한 첫 인연들을 챙기지 못했던 것을. 한편 선배들과의 관계라던가 본격적인 학과생활 참여는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우리 학과는 기수제로 운영되었는데, 그 때문에 생긴 기수환영식이라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4월 초에 예정되어 있는 ‘기수환영식’이라는 행사 전까지는 선배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는다거나 밥약을 하고 함께 어울리는 등의 활동이 불가능했다. 또한 본인을 소개하거나 칭할 때 ‘00기 000‘이 아니라 ’신입생 000‘으로 소개하도록 했다. 다른 학과라면 슬슬 수요를 조사하였을 소위 말하는 과잠도 지급되지 않았다. 우리는 과잠을 기수잠바라고 부르며 1학년 마지막 유도 수업이 끝난 후 지급하게 된다. 알고 보니 이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온 학과 특유의 군기, 부조리와 관련이 있었다. 이전에는 신입생들이 입학하면 극단적인 수준의 체력단련을 시켰다고 한다. 기수환영식 전에 체력단련과 얼차려에서 낙오된 신입생을 제외하고 기수환영식을 진행한 후, 1학년이 끝나기 전에 낙오한 학우들을 한 번 더 걸러내어 남은 인원들에게만 과잠을 지급하였던 것이다. 다만 몇 차례의 내부고발과 공론화, 언론 송출로 인하여 해당 부조리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것이 오늘날의 형태였다.
또한 과대표들을 통하여 알음알음 선배들에게 지켜야 할 소위 ‘예의’가 알려졌다. 첫 번째는 이미 몇 번 언급한 인사였다. 학과 로고가 그려진 티, 기수잠바 등으로 식별이 가능하거나 안면식이 있는 선배에게는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해야 했다. 아직도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90도로 허리를 꺾어 선배에게 인사하는 모습들로 경찰행정 학과생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두 번째는 ’다나까’ 사용이었다. 흔히 군대식 말투라고 알려진 다나까 사용이 상급자인 선배에 대한 예의였다. 군필자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부조리였다.
그렇게 낯설고 당황스러운 학과의 면모를 천천히 알아가며 억지로라도 적응해보려고 애썼다. 날씨가 점점 풀리며 뒤죽박죽이던 일상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친해진 동기들도 많았고, 종종 참여하는 주짓수 동아리 활동도 잘 맞았다. 가끔 우울과 불안에 잠이 오지 않을 땐 늦은 밤에 학교를 산책했다. 3월 중순의 동아리 박람회에서도 여러 공연과 동아리 부스를 구경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미리 에브리타임에서 신청해둔 태권도 동아리 부스에 찾아가 정식으로 가입 신청서도 작성하였다. 그리고 봄을 반기듯이 꽃이 피기 시작하며 시간은 흘렀다. 기수환영식 시작을 알리는 박수소리와 함께 내 정신은 대강당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