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나는 연기에 서투른 사람이었다

by 제이

나는 점점 학과에 빠져들고 있었고, 다르게 말하면 학과 외의 다른 것들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내가 그 시기에 학과 생활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했다면 어땠을지 아직도 종종 상상해보고는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이랬다면 어땠을까.’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학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채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사건은 기수환영식 하루 전날이자, 만우절이었던 4월 1일에 일어났다. 나는 공통교양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법학과 누나 한 명과 수업이 끝난 후 건물 뒤쪽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며 떠드는 중이었다. 그리고 당시 기수환영식 준비를 위해 관련 공지가 카카오톡 단체방에 게시되었다. 행사는 교수님들의 축사와 축하영상 시청 등이 끝난 후 단체복 추리닝 (이것마저도 기수추리닝이라고 불렀다. 옷 앞에 굳이 기수라는 단어를 고집해서 붙이는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으로 갈아입고, 이름 순으로 나와 자기소개와 포부, 희망하는 인원에 한하여 장기자랑을 한 후 기념품을 증정받은 선후배 간 번호교환을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번호교환이란 신입생이 2학년 선배에게 먼저 번호를 물은 후 연락처에 저장하고 ‘00기 000입니다’ 라고 문자를 보내 서로 연락처를 저장하는 것으로, 번호교환을 하지 않으면 선배와 함께 식사를 하며 정보를 나누고 친분을 쌓는 대학 문화인 밥약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선배가 해당 신입생보 나이가 어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경우 형님/누님, 여자의 경우 언니/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연락처를 저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와 동갑인 신입생 후배가 내 연락처를 저장할 때는 ‘60기 제이 형님/60기 제이 오빠’ 라고 저장해야하는 것이다. 당시 흡연장에서 나는 함께 있었던 법학과 누나에게 이런 말도 안되는 규칙들이 싫다며 불만을 잔뜩 토로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얼굴에 교복을 입고 있는 한 학생이었다. 오해를 막자면 많은 대학생들은 만우절에 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는 한다. 따라서 그 학생이 흡연을 하는 미성년자였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교복이 아니라 그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윗 기수의 남자 과대 선배였다. 당시에는 선배가 맞는지 긴가민가했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하고 담배를 다 피운 후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몹시 신경쓰였다. 과대 선배 때문에 소문이 퍼져 나를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많아질까 두렵기도 했다. 동시에 왜 내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눈치를 보아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애써 불안을 잠재우고 잠을 청한 후,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기수환영식 장소인 학교 본관 건물로 향했다. 개강총회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우리 기수 전원이 모이는 큰 행사였기에 친목 도모 또한 행사의 목적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서현이의 소개를 통해 H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H라는 알파벳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녀가 앞으로의 내 학교생활 뿐 아니라 이성을 대하는 내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기에, 마땅한 가명이 생각나지도 않았고 다른 이들보다 잘 구별되도록 표현하고 싶어서이다. 어쨌든 그렇게 모두가 강당에 모였고 기수환영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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