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당황했다
태극기에 대한 경례와 교수님께 대한 예의를 마치고 준비운동 첫 단계인 구보가 시작되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했던 내게 버거운 속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던 학생들, 특히 대부분의 여동기들에게는 조금 버거운 속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과 뒤에서는 파란 도복을 입은 사범 (사범이라는 직책이 무엇인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선배 두 명이 위협하듯 발을 쿵쿵 구르며 대열에서 이탈하는 동기들을 밀어넣었고, 뒤에서는 다른 선배들이 뒤쳐지는 동기들을 잡고 밀어 낙오자가 없게 만들었다. “빨리 붙어!” 뒤에서 선배들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고함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배밀기라는 유도식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힌두 푸쉬업으로도 알려진 배밀기는 상체 전반 근력을 강화하고 온 몸의 가동범위를 늘려주는 운동이다.
그렇게 준비운동이 끝나고 난 후에 유도의 기초인 낙법과 구르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몇 가지 부분에서 몹시 심기가 불편해졌다. 첫 번째로는 명령조로 냅다 반말을 사용하는 선배들의 태도였다. 나는 아무리 선배고 학년이 높다고 해도, 성인이며 같은 학생인 이상 상호간 존대를 기본으로 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그것이 대학이라는현대 학생 사회의 합의된 태도일 것이다. N수가 흔한 요즘 시대에 후배라도 나이가 같거나 혹은 더 많을 가능성도 충분한 것은 덤이다. 선배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존중과 상호 간 예의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분위기는 고압적이었다. 두 번째는 개별적인 체력 수준을 고려하거나 이해하고 따라가기 쉽도록 해주는 설명 따위는 없는 지도였다. 유연성, 근력, 체력이 상이한 신입생들에 대한 개별적인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이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될 때 까지 반복” 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윽박지르거나 강요하는 듯한 말투는 덤이었다.
그렇게 첫 유도 수업을 마치고 나는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유도가 예의와 형식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는 무술이라고 해도 선배들의 태도와 수업의 분위기는 명백히 비인간적이고 무례하다고 느껴졌다. 21세기의 이름있는 대학의 유명 학과에서 이런 모습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동시에 앞으로의 학과생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자유롭고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이었기에, 그런 종류의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에 빠르게 적응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첫 대학생활의 많은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스스로의 하루를 계획하고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은 즐거웠다. 캠퍼스투어 친구들과 수다를 나눌 때면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글쓰기와 언변에 자신이 있었기에 발표나 토론을 위주로 진행되는 강의들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 매일 나가기 전 옷을 고르고 머리를 손질하는 사소한 것들까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