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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말

2025/01/10

by Stellar

23일에 실크스크린을 찍기로 했으니까 얼른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계속 고민만 하고 있다. 어제 테스코에서 가져온 시금치를 무쳐 간단하게 비빔밥을 해 먹고 노트를 펼쳤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당이 도움이 될까 싶어 핫초코도 한 잔 만들어 먹었지만 영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단순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오늘은 털모자 나눔을 받으러 갔다 왔다. 백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는데 아마도 손주들이 쓰던 것 같았다. 귀여운 모자들을 빨아서 보풀을 떼어놓고 저녁이 되어 필라테스 수업을 다녀왔다. 북반구에서 겨울을 난지가 오래되었는데 영하 3도의 날씨가 무척 춥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니 퇴근한 인아가 이사 온 후 첫 주말을 맞아 사과와인을 사 왔다. 저녁을 먹고 감자를 오븐에 구워 와인을 마시면서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인 리들과 알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운동하고 찬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와서 따뜻하게 씻고 배도 차고 술도 들어가니 몸이 노곤해졌다. 인아는 일주일의 피곤이 쌓여 반쯤 감긴 눈으로 텔레비전을 간신히 보고 있었다.


열 시가 다 됐을 무렵 올리오 앱 알림이 와서 보니 세인즈버리 슈퍼마켓에 가져갈 음식이 있다고 했다. 거의 일주일 내내 픽업이 없어 오늘도 없을 거라 예상하고 취소하지 않았는데 가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완전조리식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샌드위치 두 개, 닭가슴살 랩 다섯 개, 믹스베리 요거트 세 통, 파스타 한 팩은 이미 폐기가 한 시간밖에 남질 않아서 빠르게 업로드를 했음에도 나눔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버려지는 음식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걸 내가 직접 해야 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음식이 상하기 전에 소비하지 못할 것 같아 일단 냉동실에 다 넣었지만 다 먹을 수 있을지 어쩔지는 모르겠다.


인아는 늘 주말을 기다린다. 내일은 오후에 함께 운동을 하고 미리 봐둔 근처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 뒤 동네 탐방을 하기로 했다. 이사 온 뒤로 더 추워진 날씨에도 하루에도 여러 번씩 밖으로 나가게 된다. 자전거를 타고 주택가 사이사이를 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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