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하늘의 별을 관찰하며 미래를 예측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내일을 예측하려는 욕망을 하늘로 투영한다. 인간의 본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에 점성술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현대에는 대학가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주위에는 사주나 타로 같은 점을 보는 공간이 많이 보인다. ‘나의 삶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 이 답을 듣고 싶어 점에 기대어 본다. 그리고 점술가들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엿들으며 위안을 얻곤 한다. 과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점술이 시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이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단순히 호기심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한 인간의 불안이기 때문이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마치 우리를 가둔 새장 같은 인상을 준다. 아무리 삶을 예측해도 끝이 정해진 천장은 결국 자유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시간과 공간이 정해진 우리 안에 동물원과 같은 것인 걸까 아니면 자신이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운명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부터 운명이라는 비밀을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 엿듣는 시간이 되어보자.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는 환경과 자신의 재능을 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일찍 뛰어난 재능을 발견해서 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목받지만, 누군가는 뒤늦게 재능을 발견해 말년에 꽃을 피운다. 그리고 누군가는 좋은 집에서 태어나서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누군가는 빈곤한 가정에서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나도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어떤 것 때문에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에서 인간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1. 인간을 이루는 것, 즉 가장 넒은 의미에서의 인격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예지와 예지의 함양이 포함된다.
2. 인간이 지닌 것, 즉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재산과 소유물을 의미한다.
3.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이러한 표현은 알다시피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즉 타인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쉽게 말해 인간의 인생은 개성, 재산, 명성에 따라 인생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로 나열한 것이다. 즉, 쇼펜하우어는 1번 인간이 이루는 것인 인격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다. 2번과 3번인 돈과 명성은 인격에 비하면 단순히 인격에서 차이 났을 때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운명을 정리해보면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인격은 뿌리, 재산은 줄기, 명성은 잎에 해당한다. 잎과 줄기가 아무리 생명력 넘쳐도 뿌리가 썩으면 나무는 결국 쓰러진다. 쇼펜하우어가 본 삶의 구조는 이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반대로 생각한다. 인격을 버려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느니, 돈이 많아야 인성이 좋아진다느니 같은 주객전도된 이야기를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이런 삶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시 삶에 대해 고민하되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우리는 결국 자신의 운명이 아닌 남이 정해준 순서를 따라온 것일지도 모른다. 태어난 것은 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과정과 끝은 정할 수 있는 것일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각자 맡은 배역의 배우들을 보다가 예능이나 토크쇼에 출현하는 같은 배우를 보면 색다른 느낌의 분위기를 풍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 배우들을 보면 정말 맡은 배역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받으며 인정받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남 일이 아니다. 우리도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무대에서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운명은 무대에서 이루진다고 보았다.
무대 위에서 어떤 사람은 제후 역할을 하고, 어떤 사람은 고문관 역할을, 또 어떤 사람은 하인이나 병사 또는 장군의 역할을 한다고 해도 이러한 차이는 단지 외적인 것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모두가 대통령, 판사, 의사, 대기업 회장, 유명 연예인 등 화려한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이것은 굉장히 좁은 문이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직업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결핍과 고충을 가지고 있다. 사실 자신이 하는 지금의 일이 가장 힘들지 않는가? 아무리 말단 사원이라도 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윗사람은 사람을 부릴 수 있으니까 편할 것 같고 부하직원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번씩 해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지위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은 각자 결핍을 가진 가련한 희극 배우임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배역에 대한 주장은 쇼펜하우어만의 주장은 아니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에서도 삶을 연극에 비유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배역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그는 우리가 배역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배역을 어떻게 연기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의 배역은 무엇인까? 그리고 지금 맡은 배역이 진짜 나의 배역이 맡는가? 인간의 인생은 이것을 찾아가고 맡은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소화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주인공은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된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도 주인공이고 주인공 옆에 스쳐지나가는 엑스트라조차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들이 주인공이다. 단 각자의 배역에 충실했을 때를 전제로 한다. 자신의 처지에 실망하지 말자. 자신이 지금 엑스트라의 신세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감독의 눈에 띄어 대사를 받고 조연을 거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것을 그리고 나의 역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에 중요한 특징으로 용기를 언급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운명의 시련에 끄떡없고 인간에 철저히 대비한 단호한 기백이 필요하다. 전체 인생이 투쟁이고, 발걸음을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우리는 싸움을 벌인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투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순응하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이에 맞서 검을 뽑아 나아갈 것인가는 나의 결정에 달렸다. 쇼펜하우어는 기꺼이 검을 뽑고 전장으로 나갈 것을 당부했다. 우리에게 다가올 재앙에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폭풍우 속을 뚫고 나갈 것을 조언한다. 인간의 인생이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이라도 겁 먹고 숨어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하게 인생을 대할 수 있다. 따라서 현명함과 용기로 무장하고 다가올 재앙에 대비하자.
우리의 인생은 혼돈과 같다. 모든 것이 확률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법륜 스님은 세상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주사위에 비유한다. 주사위에는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주사위 세 번을 던져서 누구는 숫자가 1, 3, 6으로 나오는 반면, 누군가는 1, 1, 1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같은 숫자 1일 나온 사람을 대단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냥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고 말지 않는가.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인 나보다 앞 선 사람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 아마 마음 편하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부할 것은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하지만 안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는 이런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배워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다르게 말하면 무수히 많은 욕망과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간다. 체스나 장기를 혼자 둘 수는 없듯,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 상대는 나의 진형을 계획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따라서 나도 상대의 수를 간파하며 나의 계획을 지켜나가야 한다. 운명의 바람에 나의 몸을 맡기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조난당한 사람이 아닌 한 배의 선장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p.s 예약을 걸어놨었는데 제 실수인지 안 올라갔더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