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관점과 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거칠게 나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지금 시대는 끝없는 긍정을 외치고 있다. 실패는 성장의 발판이라 히고, 고통마저 감사의 이유로 포장된다. 광고는 끊임없이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사람들은 지치고 무너진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무한한 가능성과 자기계발의 신화를 믿으며, 매 순간 웃어야 하고, 매 순간 빛나야 한다고 세상은 요구한다. 과연 이게 정말 옳은 것일까?
서양 철학에서 염세주의를 논할 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염세주의란 세상을 끝없이 반복되는 고통과 공허한 것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만사를 비관적으로 보고 항상 최악의 경우를 두려워하며 그에 대한 예방책을 강구하는 자는 항상 사물의 밝은 면을 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자에 비해 잘못 셈하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살면서 ‘비관적’이라는 단어는 아마 선호하지 않는 말일 것이다. 일상에서도 대화 중에 비관적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은 반감이 들기 마련이다. 비관적인 말만 늘어놓는 사람 옆에 있을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일을 할 생각이 없나.’, ‘왜 일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와 같은 생각 말이다. 이 사람이 낸 의견을 무시하고 실패한다는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적당히 일을 진행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낙관적인 생각이 성공하는 삶에 필요한 요소라고 배웠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모든 일에 최악의 상황을 염두해 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삶을 비관적으로 봐야 할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비관주의를 오히려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쇼펜하우어는 모든 인간의 삶은 전체적으로 보면 비극의 특성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세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아 죄절했던 날, 청춘을 모두 투자해 성공을 꿈꾸며 창업했지만 결국 실패했던 날, 인생을 오직 일만 하다가 진정한 행복은 단순한 일상에 있었다는 사살을 뒤늦게 깨달았던 날, 그것이 삶이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삶은 대체로 실패로 끝난 일련의 희망, 공허하게 끝난 계획, 너무 늦게 깨달은 오류와 다름 없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에게 행복한 삶이란 불가능하다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삶은 결코 축복이나 행복이 아닌, 끊임없이 실망, 좌절 그리고 후회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삶이란 우리에게 부여된 엄중한 질책으로 봐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여기서 엄중한 직책이란 징벌인 동시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수단이다. 결국 비관주의는 삶을 부정하거나 절망에 빠지자는 태도가 아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환상이나 오만에서 벗어나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모든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때 오히려 삶을 직시하게 된다.
결국 쇼펜하우어가 비관주의를 선택한 이유는 삶의 깊은 진실과 정직하게 마주하기 위해서다. 긍정의 환상은 잠깐의 위로는 될 수 있지만 삶의 근본적인 고통은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삶의 어두운 진실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내면의 흔들리지 않는 힘을 얻게 된다. 희망을 비우고 욕망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내면의 흔들리지 않는 힘을 얻게 된다.
희망을 비우고 욕망을 내려놓을 때 삶은 더 이상 환상 속의 추구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로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쇼펜하우어가 말하고 있는 염세주의는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삶을 가장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삶의 무의미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의미 없는 순간 조차 가치 있게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결국 삶이란 행복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기 위해 존재한다. 무조건 긍정하거나 무조건 부정하는 대신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쇼펜하우어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현실적인 지혜다.
너무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너무 행복해지려는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