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정의가 아니라 분노의 대상 찾기에 빠진 사회

by Kn

정의가 아니라 분노의 대상 찾기에 빠진 사회


오늘날 우리는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어떻게 배치하고 발산하는지를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는 하나의 판결이나 이슈가 생기면, 해당 사안의 본질보다 감정의 ‘대상 설정’이 먼저 이뤄지고, 그 감정을 어디에 어떻게 투사할 것인가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과 언어가 급격히 갈라진다. 이는 단지 '의견 차이'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감정의 분포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1. 사건이 아닌 감정의 배치로 분열되는 사회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운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사건이 발생하면 우선 ‘감정적 경로’가 작동하고, 이후 그 감정을 정당화하거나 보호하기 위한 논리가 후행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는 ‘감정의 분포’를 기준으로 갈라진다. 어떤 이들은 공감과 슬픔의 분포 속에 머무르고, 어떤 이들은 분노와 복수심의 강한 밀도를 따라간다. 이렇게 분포가 분리되면,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결론과 태도가 형성된다.

예컨대, 아동 학대 논란이 있었던 한 재판 사례에서 1심과 2심의 판결이 달라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사건의 세부적 정황보다 자신의 감정이 향하는 대상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피해 아동에 공감했던 이들은 슬픔과 분노를 교차시켜 조용한 지지를 보낸 반면(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억울함을 느낀 이들은 분노의 확실한 대상을 설정한 뒤, 그것이 ‘장애아 부모’든 ‘기자’든 조롱과 공격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출했다(이 또한 예외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2. 감정 분포의 차이가 도덕적 판단을 지배한다.


이러한 현상은 도덕적 판단이 이성적 기준보다는 ‘감정 분포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덕 판단은 더 이상 고정된 기준에 따라 이뤄지기보다, 감정이 향하는 방향과 밀도,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공유되고 있느냐에 따라 ‘정당함’으로 포장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분노의 방향 설정'이다.

분노는 강한 밀도를 지닌 감정이며, 그 대상이 명확할수록 폭발력도 커진다. 이는 마치 고압 상태의 에너지가 분출될 배출구를 찾는 물리적 현상과도 유사하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분노는 사회적 부정의나 억울함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더 자주 보이는 양상은 애매하거나 복잡한 사안에서조차도 ‘분노할 수 있는 대상’을 신속하게 설정하고, 그 대상에 감정을 몰아가는 패턴이다.

이것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화”가 아니라 “감정적 해소의 대상화”이다. 다시 말해, 정의를 추구한다기보다는, 정의를 추구하는 감정 자체의 분출이 중요한 것이다.


3. 분포 이론과 감정의 사회적 구조


이러한 흐름은 '분포 윤리학'의 관점에서 더욱 선명하게 설명될 수 있다. 감정은 개인 내부에서 무작위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 교육, 언어, 기억, 소속된 집단 등에 따라 ‘감정의 분포 구조’를 형성한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분포 구조 중 어느 부분이 강하게 활성화되는지가 판단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1심 판결을 지지한 사람들은 강한 공감 분포 속에 있었고, 2심 판결을 환영한 이들은 억울함과 분노의 분포를 공유했으며, 동시에 확실한 분노의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더 강한 감정적 결집을 이뤄냈다. 여기서 분포의 밀도와 방향성이 결론을 지배하는 힘이 된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탐색이 아니라, '누구를 향해 분노할 것인가'라는 감정의 방향성 설정 싸움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도덕이 ‘정서적 기저’에서 움직인다는 심리학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4.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


이러한 분포 구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할까. 첫째, 자신이 느끼는 분노의 대상이 정말 '그 사안의 본질'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분노를 배출할 대상을 무의식적으로 찾은 결과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둘째, 감정 분포의 차이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감정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도덕적으로 무가치한 존재로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의란 결코 감정의 강도로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분노가 크다고 해서, 슬픔이 깊다고 해서, 그 감정의 방향이 언제나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 감정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배치되었으며, 어떤 사회적 분포 속에서 구성되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사유의 시작이다.

이 시대는 정의의 시대이기보다 감정의 시대이다. 그러나 그 감정이 과연 어디로, 누구에게, 왜 향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태도야말로 우리를 다시 정의의 자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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