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분포, 감각의 경계

by Kn


언어 이전의 사유: 감각의 흐름과 본질


인간은 종종 무언가를 떠올리기 전에 이미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다. '즐겁다', '흥미롭다', '행복하다' 같은 감정들은 언어로 정의되기 전, 감각적으로 먼저 존재한다. 우리는 그 감각을 포착한 후, 자신이 배워온 언어 체계 속에서 가장 가까운 표현을 찾아 연결하려 한다. 이처럼 감정과 감각은 언어 이전에 존재하고, 언어는 그것에 대응하려는 사회적 약속이자 그릇이다. 그러나 그 그릇은 언제나 넘치거나 모자란다. 우리는 자주, 감정이 언어로 정확히 표현되지 않는 좌절을 경험한다.


언어의 편의성과 진화


초기 인간은 말보다는 몸짓, 손짓, 표정, 그리고 소리의 억양을 통해 의사를 표현했다. 예컨대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라는 단순한 문장은, 수천 년 전에는 손을 들어 보이고, 무기를 내려놓으며, 억양을 누그러뜨리는 방식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는 매우 복합적이고 에너지 소모가 큰 방식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간은 '발화 언어'라는 편리한 방식을 개발했고, 그 효율성과 재사용 가능성, 정밀도 덕분에 언어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언어의 편의성은 사회의 안전성을 높이고, 빠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언어의 편의성은 곧 획일화의 시작


그러나 언어는 편의성을 얻는 동시에, 감각의 복잡성과 개별성을 포기했다. 사회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점점 정제되고, 정확해졌지만, 동시에 획일화되었다. 개인의 감각은 점점 더 '표준어'라는 그릇에 맞춰져야 했고,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비표준, 비이성, 혹은 부적절함으로 취급되기 쉬워졌다. 결국 우리는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데 능숙해질수록,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사유와 감정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세대와 언어: 층위와 단절


언어는 한 세대의 삶의 토양 속에서 정제된다. 그래서 세대마다 그들만의 언어적 감각과 코드가 존재한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언어를 보수적 체계로 여겨 권위와 교양의 이름으로 후속 세대에 전달하려 한다. 반면, 새로운 세대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감각을 더 정확히 표현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간 언어의 층위화가 생기고, 언어의 권위 구조가 형성되며(마치 한자어를 잘 사용하는 것이 대단한 언어 능력을 지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 등), 충돌이 발생한다. 국립국어원이나 언어 권위기관이나 교사 등이 개입하게 되는 지점도 여기다.


글로서의 언어 발달: 감정의 진폭과 표현의 극단화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의 보급은 언어의 발화보다는 문자 기반 소통을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 말은 상대의 즉각적인 반응을 고려해야 하기에 감정을 억제하고 정제하는 데 특화된 반면, 글은 익명성과 거리감 덕분에 감정의 폭발이 쉽게 이루어진다. 그 결과 극단적 표현들이 발달했고, 감정의 진폭 자체가 커지기 시작했다. '극혐', '무슨무슨충'과 같은 언어는 그 산물이라 생각한다. 문자 언어는 새로운 시대의 표현 방식이 되었고, 이는 인간 사고(주로 새로운 세대들)의 구조를 바꾸고 있을지 모른다.


말의 규율과 글의 확산: 언어 발달 메커니즘의 양극


과거의 말 기반 사회는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고, 신중함과 겸손이라는 미덕을 발달시켰다. 말은 행위를 보장하지 않지만, 행위의 예고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언어의 신중성은 도덕성과 직결되었다. 반면, 문자 기반 사회는 표현의 확장성과 즉각성을 무기로 삼았다. 이 변화는 새로운 세대의 감정 구조, 판단 구조, 그리고 사고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언어와 분포 이론


분포 이론은 이 모든 언어적 변화와 인지적 착시를 설명하는 데 나름대로 탁월한 틀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감정이나 사유를 '나의 생각'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환경, 맥락, 인상 강도에 따라 특정한 사고 패턴이 '확률 분포적'으로 활성화된 결과일 뿐이다. 그 사고는 정체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조정되고 해석되는 구조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포를 '생각'이라는 단어로 고정시키며, 착시를 일으킨다. 이 착시는 언어의 강압 구조, 획일화, 사회적 통제력과 맞물려 더욱 고착화된다.


언어와 행위의 조합(추상 개념의 탄생)


'신뢰', '정직', '책임'과 같은 추상적 개념은, 누군가의 말과 그 말이 지켜졌을 때의 반복을 통해 축적되며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 언어가 행위와 일치할 때, 그것은 미덕이 되었고,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반대로, 언어와 행위가 불일치할 때, 그것은 '거짓', '기만', '불성실'이라는 낙인이 되었다. 이처럼 추상 개념들은 언어-행위 간 관계의 사회적 누적이 만들어낸 분포의 안정화 형태이다.


감각과 표현의 간극(예술로의 확장)


사람들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연주하고, 노래하는 이유는, 언어가 포착하지 못하는 감각의 분포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진동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언어가 본질적으로 감각을 담기에는 너무 얇고, 너무 강압적이며, 너무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그 간극을 메우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시도이며, 개인적으로는 사유의 복원 장치라고 생각한다.


언어 너머의 사유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유하지만, 동시에 언어 때문에 사유가 가려지기도 한다. 언어는 편의성을 주지만, 복잡성을 잃게 하고, 사고를 구조화하지만 동시에 고정화한다. 우리는 언어의 힘을 이해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사유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지극히 주관적이며 얕은 사고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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