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수업 지문 2
자본주의가 무섭게 휘두르는 경쟁이라는 무기는, 그 자체로 층위화된 서열 구조이자 계층 경쟁 시스템을 내포합니다. 이는 과거의 계급 사회에서 유래한 듯 보이는 구조로, 사장이나 CEO 같은 최상층부터 그 아래,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도 끝없는 서열과 경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상위층에 있는 자본가들은 이 경쟁의 구조를 활용하기 쉽습니다. 한 번 시스템이 구축되면, 그 안에 속한 수많은 층위의 인간들이 스스로 경쟁하고, 살아남고, 도태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들은 스스로 일군 것이든, 물려받은 것이든-예컨대 회사, 공장, 엘리트 교육, 문화자본 등-그 위에 경쟁 시스템을 덧붙입니다. 물론 이는 애초에 좋은 인재를 찾기 위한 출발점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경쟁은 야만이다.’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이 시스템은 무서운 지점을 가집니다. 경쟁은 종종 인간성을 말살하고, 비인간화를 낳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능력주의나 성과주의 명문 아래, 인간성은 아예 배제된 채 오직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의 싸움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은밀하게 진행되기도 하며, 교묘하게 감춰지거나, 아닌 척하면서도 일어납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경쟁 속에서 ‘좋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념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경쟁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능력에 대한 환상을 심어줍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 아님에도, 능력 없는 사람이 반드시 나쁜 사람이 아님에도, 우리는 능력 있는 이를 더 나은 사람처럼 왜곡해서 인식하곤 합니다. 심지어 계산이 빠르거나, 약삭빠르거나, 단순히 부유한 사람을 ‘능력 있는 자’로 미화하여, 이러한 모습 평가 속에 숨겨진 비인간성마저 보기 좋은 포장지로 감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좋다’라는 평가가 종종 경제적 효율성이나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것에만 국한되며, 이것이 도덕적, 인간적 가치와 충돌하는 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긍정적인 통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좋은 인간’이라 불리는 평가가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한 선택이 어느 집단에는 손해를, 어떤 조직에는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좋음’은 그것이 과연 보편적이고 진정한 ‘좋음’인가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역동적인 현실 세계를 ‘좋음’으로 ‘획일화’하거나 단순화하는 것이 잘못된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게 도와줍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이런 단면은 ‘좋다’라는 단순한 표현이, 역동적이고 복잡한 세계를 획일화하는 폭력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