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틈 사이에서

– 안 한 것인가, 못 한 것인가?

by Kn

(수업용 지문 - 미완)



수업 목표:

‘안 했다’와 ‘못 했다’라는 표현의 언어적, 철학적, 사회적 의미 차이를 이해한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자신의 경험과 언어 사용을 성찰하고, 모호함을 수용하는 감수성을 기른다.

두 관점(철학적/분석적)을 비교하며 비판적 토론 능력을 기른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안 했다”와 “못 했다”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이 두 표현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언뜻 보기에는 자발성과 불가능성이라는 명확한 구분처럼 보이지만, 실제 인간의 행위는 그 경계를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 어떤 상황에서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 스스로의 의지였는지, 혹은 외부적 제약 때문이었는지조차 본인도 판단하기 모호할 수 있다. 예컨대 한 학생이 “나는 어제 공부를 안 했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단지 스스로의 선택인지, 아니면 극심한 피로와 정신적 번아웃으로 인해 도저히 공부할 수 없었던 상태인지는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말은 간결할지라도, 그 말 뒤에는 수많은 감정, 자기검열, 자책, 방어적 정서 등이 얽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적 대화 속에서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분명히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여기서 문제는, 언어가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경험을 온전히 담지 못한 채, 그 자체로 하나의 판단을 강요하는 구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의지’를 통해 그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안 했다는 말 뒤의 선택도, 못 했다는 말 뒤의 제약도 극복해낼 수 있으며, 그렇게 다시 책상에 앉고, 개념을 이해하며,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기존의 인식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역량을 우리는 흔히 ‘대단함’ 또는 ‘위대함’이라 부른다.

이러한 이분법적 언어 구조는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의식과 정체성까지 규정하는 힘을 가진다. 우리는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내면의 복합성을 표현하기보다는, 언어가 허용하는 틀 안에서만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방향으로 사고를 수렴하게 된다. 특히 권위자의 질문, 혹은 제도적 문맥 안에서 이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네가 안 한 거니, 못 한 거니?”라는 질문은 이미 답변자의 사고를 양자택일의 구조로 몰아넣는다. 이 질문은 의식 속 모호함의 여지를 박탈하며, 인간이 자신의 진실을 모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차단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언어 구조가 개인 내부에까지 내면화된다는 데 있다. 인간은 스스로도 “내가 안 한 건가, 못 한 건가?”를 고민하며, 언어의 틀에 따라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조정하려 한다. 이때 언어는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고의 방향을 미리 결정해놓는 통제의 장치가 된다. 결과적으로, 언어는 때로 진실을 표현하는 데 실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행위를 왜곡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복잡한 감정을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명확하지 않은 태도, 모호한 발언은 “핑계”나 “무책임”으로 비난받기 쉽다. 사회는 ‘효율적 의사소통’, ‘정확한 책임 분담’을 이유로 언어에 확실성과 일관성을 요구하고, 이는 곧 모호성에 대한 불관용과 인간 경험의 단순화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인간 내면의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언어적 표현의 가능성마저 포기하게 된다.

결국, “안 했다”와 “못 했다”의 구분은 단지 의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라는 구조 안에서 무엇이 말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말이 침묵 당하는가의 문제다.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곧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는 사회 속에서, 언어는 사실의 거울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가 된다. 진정한 언어의 해방은 말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말 안에서조차 모호함을 인정하고, 진실이 항상 명확하지 않음을 허용하는 감수성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언어 이전의 사유는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