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이전의 사유는 가능한가

by Kn

언어 이전의 사유는 가능한가

— 감각, 인식, 그리고 분포의 관점에서


인간은 감각을 통해 세계를 받아들인다. 감각은 언어보다 먼저 작동한다. 강렬한 냄새, 빠르게 다가오는 위험, 문득 떠오르는 슬픔이나 기쁨의 파동은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에 이미 우리 안에서 '무언가'로 존재한다. 우리는 그 ‘무언가’를 말로 붙잡으려 시도하고, 가장 근접한 단어를 고르며, 때로는 새로이 조합하여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사유가 반드시 언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전통적 언어중심주의의 틀을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 설명할 수 없는 통찰, 단어로는 부족한 상황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의미를 느끼며 살아간다. 이러한 감각적 포착은 언어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사유’가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또한, 언어는 종종 감각의 결을 뭉개거나,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즐겁다’, ‘기쁘다’, ‘흥미롭다’, ‘행복하다’는 표현은 서로 유사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지만, 일상의 언어에서는 이 감정들이 하나로 통합되거나 뒤섞이곤 한다. 감정은 훨씬 더 복잡한 파동임에도, 언어는 그것을 단정 지어버린다. 즉, 언어는 감각을 분류하고 붙잡지만, 동시에 그것의 미묘한 떨림을 고정된 의미로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사유는 ‘언어 이후’가 아니라 ‘언어 이전’에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느낀 것'과 '내가 떠올린 단어' 사이에는 명확하지 않은 간극이 있으며, 우리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계속해서 단어를 찾고, 고치고, 심지어 창조해낸다. 신조어의 탄생 또한, 언어 이전의 감각적 포착과 그것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창조적 시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만이 언어를 통한 사유를 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 또한 소리, 몸짓, 표정 등을 통해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이를 통해 일종의 사유 구조를 형성한다. 예컨대, 벌의 ‘춤’은 복잡한 위치 정보를 전달하는 비언어적 표현 방식이며, 이는 인간 언어와는 다른 기호 체계로서의 사유를 보여준다. 따라서 사유는 언어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언어와 독립적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더 깊고 넓은 현상임을 시사한다.

결국, 사유는 언어 이전의 감각과 인상들 속에서 먼저 태어나고, 언어는 그 사유를 조직하고 분류하며,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그릇으로 다듬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이 그릇은 때로 너무 작거나, 너무 단단하여 사유의 흐름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내가 가볍게 또 우연히 만들어본 ‘분포 이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이나 인식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순간순간 활성화되는 확률적 분포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사유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분포들 중 일부가 떠오르며 강하게 인지되는 일련의 흐름일 수 있다. 이러한 분포는 언어 이전에 존재하며, 언어는 단지 그것을 포착하려는 하나의 기호적 시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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