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온 설 선물
간이 작아요. 제가요. 안 꺼내 봐서 모르겠는데 아마 작을 듯싶어요. 뭔가 내가 나쁜 짓을 했다 싶으면 간이 콩닥콩닥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거짓말하고 편법 부리며 사는 거 싫어합니다. 연애할 때 남편이 차 문 열고 자기 차에 있는 먼지 같은 거 밖으로 털었는데 그날 헤어질 뻔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어머니 생신 기념 가족 여행 중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남편이 장애인 전용 구역에 차를 잠깐 정차하고 있겠다며 이야기해서 대판 싸운 적도 있습니다. 그날 주차장이 만차이기는 했어요. 1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직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교사가 되고부터는 이런 강박이 조금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뭔가 내 제자들이 보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도덕과 법은 무조건 지키며 살아야 한다가 제 신조입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현관문 앞에 놓여 있는 김 선물 세트를 발견했습니다. 어라! 명절이라고 누가 선물을 보냈나? 하고 운송장을 확인했죠. 어? 이름이 이상하네. 주소는 분명 우리 집이 맞는데. 운송장을 보니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이름도 다 나와 있지 않고, 연락처도 마지막 번호는 지워져 있습니다. 정 씨? 정 씨? 이전에 우리 집에 사시던 분인가? 맞다 정 씨 아저씨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사 오고도 3개월가량 그 사람의 택배며 우편물이 우리 집으로 와서 연락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남편이 오면 그 사람 연락처 있는지 물어보고 가져가라 연락해 주면 간단히 해결될 것 같습니다.
기다리던 남편이 왔습니다. 남편은 제가 밖에 두고 온 김 선물 세트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거, 우리 선물 아니야.”
“누구 건데?”
“아마, 전에 우리 집에 살던 사람 같아.”
“아, 정 씨 아저씨 맞아.”
“그 아저씨 연락처 혹시 저장해 놨어?”
“아니, 없는데. 그게 벌써 3년이 넘었다.”
인제 어쩌지? 김 선물 세트를 보낸 곳을 확인해 보니 우리 집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농협. 아마 조합원들에게 보낸 설 선물 정도인가 봅니다. 그건 그렇고 이 잘못 온 선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습니다. 남편은 이거 얼마 안 한다며 그냥 먹자고 했습니다. 이 김 얼마 한다고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군요. 월요일에 농협에 전화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선물 세트는 고스란히 다시 문밖으로 퇴장시켰습니다. 내 물건이 아니니 내 집으로 들어올 수 없소!
월요일 아침 아들과 병원을 다녀온 후, 선물 생각이 나서 농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하니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과 연락처를 남겼죠. 점심 무렵이 되어서 다시 농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사모님, 사모님이라니요. 아무튼 농협의 좀 높은 분으로 보이는 여자분이(그분이 더 사모님 같았다.) 자기가 이 농협으로 옮겨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선물 세트 보내기 전에 주소확인을 다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은 그냥 우리보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웃으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예, 적금이나 은행 업무를 볼 일이 있으면 지나가는 길에 자기 지점을 방문해 달라더군요. 네. 저도 웃으면서 그러겠다 대답했습니다. 아 근데 저 말이죠. 봄에 만기 되는 적금이 있는데 그 돈 가지고 여기 한번 가야겠어요.
금도끼 은도끼 있잖아요! 여러분은 자신 있게 쇠도끼가 내 도끼라고 말할 자신 있으세요? 저는 자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예요. 현실에서는 산신령 같은 분을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겠지만 그래도 산신령 기다리며 정직하고 착하게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