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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Sep 17. 2023

12. 세상에 이런 직원 없습니다.

-초보 사장과 수상한 직원 이야기

작년 봄 남편은 기어이 사표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이모와 전화가 잦더니 벌써 영업할 자리도 구했다네요. 은행 대출받아 이사 온 지 9개월 만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입니다.

“안 하면 안 될까? 우리 이사도 해서 돈도 없어.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여기저기 문 닫는 가게도 많은데. 나 큰돈 안 바래. 그냥 지금처럼 월급 받아서 대출금이나 갚아 나가면 안 될까?”

“응, 안돼.”     


  말릴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대출금이 꽤 있었기에 은행에 더 이상 갈 수도 없었습니다. 시어머니께, 그리고 결혼 안 한 친언니에게 돈을 빌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딸내미 적금 통장까지 깨면서 자동차 정비소를 차렸고, 나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6월 오픈을 앞두고 주변에 수소문해 직원도 구했습니다. 그 직원 면접을 보고 온 날 저녁 남편은 저에게 운을 띄웠습니다.

“일단 3개월 수습 기간 거쳐보고 계속 데리고 있을지 최종 판단할 거야. 근데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야. 팔뚝에 문신이 있던데 그건 토시로 꼭 가리고 출근하라고 신신   당부했어.”

“그래? 뭐 내 직원도 아니고 당신 직원인데 당신이 좋으면 되었지, 뭐.”

처음부터 초를 칠 수 없으니, 그리고 지내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크게 걱정도 안 했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남편의 직원 희망상은 일은 못해도 (기술은 조금 부족해도) 예의 바르고 인사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개업 1년 3개월 차 남편의 정비소는 그럭저럭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직원은 3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나가버렸습니다. 우리는 고마웠고요. 오늘은 내 마음에 1도 안 들었던 그 직원 이야기 좀 해보겠습니다.       


  일한 지 3일 만에 재직증명서 발급을 요청했습니다.

“사장님, 저 재직증명서가 필요합니다.”

“그래, 어디 제출할 건데?”

“그게, 제가 사정이 좀 있어서요.”

 아는 게 1도 없던 초보 사장은 아는 법무사에게 재직증명서 발급 요령을 물어서 재직증명서를 발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직원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제가, 지금 보호 감찰 중인데, 거기 보호 감찰 담당자분께 서류 제출해야 해요.”

그 녀석은 사연이 많았습니다. 몇 년 전 술집에서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보호 감찰 중이고 내년쯤이면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 숨기거나 할 말 있으면 더 해보라고 하자 줄줄이 새로운 신상정보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녀석의 아픈 가정사, 건강적인 문제, 음주로 인한 면허 취소까지. 내 마음은 나날이 불편했습니다. 내 기준에 이 사람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법을 어기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처음부터 정직하지 못했다는 것에 더 화가 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만나지도 못했겠지요.     

 

  그는 눈치도 없었습니다. 남편 가게에 지인들이나 친한 친구들이 놀러 와서 이야기를 하면 눈치도 없이 끼어들곤 했습니다. 몇 번이나 주의를 주어도 또 까먹고 말을 섞었다고 합니다. 사장 친구는 자기 친구라는 마인드. 하루는 남편 친한 동생에게 형님 형님 부르며 친한 척을 했답니다. 그리고 갑자가 폰을 내밀며 전화번호를 찍어달라고 하자, 그 동생이 정색해서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랑하던 음식점 주방장 경력은 아무 쓸모가 없어서 패스하고요. 자동차정비 전공자도 아니었습니다. 타이어 가게에서 1개월 근무한 게 고작 그의 경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감과 의욕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1단계까지 작업을 해 놓으라고 시키면 1단계까지 하면 될 것을 자체 진도를 나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재작업 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엔진오일 갈려고 들어온 차에 미션오일 코크를 열어서 배출한 이력과 리프트를 띄우지 않고 타이어를 빼려고 했던 그의 활약상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몸집이 컸던 이 녀석은 은근히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듯했습니다.

 “저 살 빼야 해요. 저 생각보다 밥 많이 안 먹어요. 저 커피도 아메리카노만 마셔요.”

 “네, 여기 일이 힘드니까, 곧 날씬해지겠네요.”

언행 불일치. 그는 고객대기실 미니 냉장고에 있는 고객 접대용 음료수를 하루에 서너 개씩 축냈습니다. 뭐 치사하게 이런 것까지 눈치를 봐야 하냐고 묻는다면 분명하게 할 말은 없지만, 오픈 초기라 아직 손님도 많이 없는데 냉장고만 텅텅 비어 가고 아무튼 심란했습니다. 이 캔 음료 협찬 아니고, 저희가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채우던 음료수였습니다.      


  그는 입사 한 달이 좀 넘어서 이직 의사를 내비쳤고 남편은 쿨하게 오케이 했습니다. 인근 타이어 전문점에서 지금 받는 월급보다 20만 원을 더 주겠다고 했고, 남편은 20만 원은 큰돈이라며 당연히 가야 한다며 말해 주었죠. 뭔가 앓던 이를 뽑아 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마지막 퇴근길 그 녀석이 또 한마디 건넵니다.

“형수님, 제가 여기 오래 다니려고 했거든요. 너무 죄송해요. 제가 딴 데 가서도 여기 홍보 많이 할게요.”

“네네, 그동안 수고했어요. 잘 지내요.”

그리고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그딴 마음에도 없는 소리 듣기 싫다. 다시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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