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러 가는 길
나란 사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아. 근데 말이야. 또 한 번 마음을 주고 나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말이지.
어제 언니 새 차가 나왔어. 겨우 13만 조금 넘게 탔는데 새 차를 덥석 구매하다니,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러면서 뭐라는 줄 알아? 주차하기 겁난데. 차 긁힐까 봐. 참나. 나에겐 15만 넘게 탄 애마가 있지. 1년에 2.5만 Km씩 타니까 곧 20만이 다가오고 있어. 유튜브 구독자가 10만이 넘으면 실버버튼을 주잖아. 나라에서 차 오래 타면 이런 버튼이라도 1개 주면 참 좋겠다. 앗. 또 쓸데없는 소리. 내 차가 2008년식이라고 무시하지 마. 껍데기는 많이 낡았지만 내면은 튼튼한 아이야. 아직 크게 고장 나서 고쳐본 적이 없다니까. 남편 말로는 지금 팔아도 200만 원도 못 받는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팔 생각이 없어. 이 녀석을 보내는 날 나는 펑펑 울지도 몰라.
너를 처음 만난 날. 2021년 여름. 이사를 앞두고 가구점에 가구를 사러 갔어. 소파와 식탁, TV장, 거실 테이블까지 야무지게 쇼핑을 했지 그날 거기 직원이 사은품이라며 너와 세제 꾸러미를 챙겨주더라. 집에 와서 펼쳐보니 얇기는 하지만 세련된 디자인에 네가 마음에 쏙 들었어. 장바구니로 쓰기엔 너무 아깝고 그래서 너는 내 출근 가방이 되었지. 품이 넉넉해서 물건이 많이 들어가더군. 교과서며 교사용 지도서, 업무용 서류에 교무수첩까지. 그렇게 너는 나와 함께 3년 6개월 정도 출근을 함께 했다. 일을 다 못해서 일거리를 가방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온 날은 너도 마음이 무거웠겠지? 반 아이 문제로 상담을 하고 수첩 가득 상담일지를 쓰고 퇴근한 날은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지도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잘 헤쳐 나갔고, 둘이어서 든든했다.
그 사이 때가 타서 너를 두어 번 세탁했지. 그런데 지난겨울부터 네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지. 어깨끈이 해지기 시작한 거야. 한번 난 상처는 아물 줄 모르고 날이 갈수록 상태는 나빠졌어. 휴대폰을 꺼내 너와 닮은 애를 다시 데려올까 검색도 해보았지만 네 생각이 날까 그만두었어. 그 대신 딸내미 방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에코백 중 제일 튼튼한 녀석을 네 후임으로 정했다.
미루고 미루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오늘 드디어 너를 보내주려 한다.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 너와 함께하는 출근길이 그리울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내 걱정 그만하고 편히 쉬어라. 그동안 내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 준 고마운 너, 잊지 않을게. 고맙다.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