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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상: 완벽한 교육과정보다 빛나는 동료라는 보석

제가 큰 상을 받았습니다.

by 사차원 그녀

12월 31일에 겨울 방학을 한다. 방학 전에 꼭 넘어야 하는 산 2학기 교육과정 워크숍(협의회)이 화요일에 있었다. 교육과정 워크숍의 주요 내용은 2026년 학사 일정 협의, 교육과정 주요 사항 협의와 행정 실장님의 2026년 예산 편성 지침 안내 연수가 있었다. 교육과정 워크숍이 있기 전 학생, 학부모, 교직원들은 설문에 참여하여 2학기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그리고 내년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의견을 자율적으로 남겼다. 또한 지난주 학년군 협의회와 업무 부서별 협의회를 통해 잘된 점과 개선점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교육과정 워크숍을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보면 되겠다.


교육과정 협의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도서관에 모인 우리는 투표를 진행했다. ‘올해의 00(학교이름)인’ 시상을 위한 투표였다. 센스만점 연구부장이 준비한 소소한 이벤트였다. 상은 총 10개였고, 상 이름이 신선했다. 투표 결과는 2차 회식장소에서 발표를 한다고 하니 두근두근 설레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워크숍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으며, 특히 내년에는 2개 학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필요 없는 행사를 줄이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까에 중점을 두고 협의를 진행했다. 내년에 나는 학교를 떠날 예정이지만 나름 열심히 참여했다.


2차 회식장소인 다찌집에 도착했다. 나는 운전을 해서 집에 가야 하므로 술을 마실 수 없었다. 맛있는 안주들이 너무 많이 나왔지만 생수만 2병 비웠다. 드디어 올해의 00인 시상이 있었다. 상품도 없는 달랑 상장 1장이었지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교직경력 15년 만에 이런 상은 처음인데 기쁨이 아주 컸다. 그럼 지금부터 연구부장이 준비한 10개의 상과 수상하신 선생님들의 업적 소개가 있겠다.


첫 번째 상은 아침 일찍 기상, 이 상의 수상자는 바로 접니다. 매일 6시 기상, 6시 55분 출근, 7시 50분 학교 도착, 이 루틴을 3년째 하고 있다. 학교에 도착하면 교무실에 가서 불을 켜고 히터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모닝커피 8잔을 준비한다. 커피머신이 다하는 일이라서 나는 물을 채우고 버튼만 2번 누르면 된다. 그러면 8시-8시 5분 사이에 교무선생님이 출근하신다.

가끔은 교무실에 숨어서 들어오시는 교무선생님을 놀라게 만드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동안 이걸로 글을 써볼까 했는데 실패해서 오늘 사진 풉니다.)

첫 번째 사진: 아침부터 병나발 부는 교사(이건 그날 아침 남편이 차에 소주 뿌리라고 준 건데 다 뿌리고 빈 병이 남아서 연기를 좀 해봤다.)

두, 세 번째 사진: 고전적인 숨어서 놀라게 하기 작전, 문 밑에 숨어있으니 금방 들켜서 나중에는 책상 밑에 숨어있었다.

네 번째 사진: 위장술, 그 전날 큰 물건이 왔는지 큰 박스가 있어서 은폐, 엄폐를 하고 교무선생님을 기다렸다. 근데 실내화 때문에 들켰다.


두 번째 상은 학교에서 저녁밥상, 4시 30분은 이제 시작이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학교의 저녁을 밝힌 사람은 바로 우리 K교무선생님. 교무선생님 자리는 교무실이다.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하니까 일이 안된다는 그분의 핑계 아닌 핑계, 그래서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신다. 지난주에는 나도 일이 남아서 늦게 퇴근을 했는데 교무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김밥과 컵라면 덕분에 배불리 먹고 일할 수 있었다. 올 한 해 우리 학교가 이렇게 잘 돌아간 건 아마도 우리 김교무선생님의 야근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 번째는 매의 눈상이다. 공문서나 자료에서 오탈자나 미흡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발견하는 사람 우리 교감선생님 되시겠다. 올해 내가 교육감 표창을 받기 위해서 공적조서를 작성했는데 또 그걸 우리 교감선생님이 기가 막히게 보완을 해주셨고, 덕분에 나는 10년 만에 표창장을 받았다. 모든 영광을 교감선생님께 돌리고 싶다.


네 번째 절약의 아이콘상, 사무용품이나 물품을 아껴 써서 국민의 혈세 절감에 기여한 사람은 행정실의 J주무관님. 9월에 오신 J주무관님은 경력이 많으셔서 그런지 일을 정말 잘하신다. 예산 쓰기 전에 의문이 생기면 바로 가서 의논을 드리고 품의를 낸다. 그러면 일이 한결 수월하다. 덕분에 나는 올해 예산을 야무지게 잘 쓸 수 있었다.


다섯 번째 금단현상, 매력적인 언행으로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람. 영광의 수상자는 옆반 L 선생님. 선생님은 일단 모르는 게 없으시다. 40세가 넘으셨는데 최신 유행에 누구보다 민감하시다. 휴대폰을 피부처럼 아끼시는 분이라는 건 안 비밀. 아무튼 선생님은 매력적인 언행으로 많은 분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몇 주전 내가 아이들 음악 가창 평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또 명언을 던져주셨다.

노래를 불러야 할 때는 우리 집에 불이 났다고 생각하고 불러라. 불이야! 불이야! 우리 집이 불타고 있는데 네가 어떤 목소리로 불이야를 외쳐야 하겠는가? 그 마음과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라!


여섯 번째 노력이 가상, 하루하루 쌓아 온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준 사람은 우리 K실장님. 실장님은 울릉도에서도 근무를 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교육청에서도 일을 오래 하셨다고 했다. 진짜 성실함과 책임감의 아이콘이시다. 내가 여름에 회식 자리에서 실장님께 일하는 스타일이 이재명 대통령 같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실장님이 놀라셨다. 이게 긍정의 반응인지 부정의 반응인지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진심 실장님을 존경하는 뜻에서 올린 칭찬의 말이었다.


그 외 나머지는 짧게 소개하겠다.

떠나가서 속상-내년에 떠나지만 꼭 다시 함께 근무하고 싶을 정도로 아쉬운 사람은 6학년 U선생님과 P선생님이 수상하셨다. 두 분은 우리 학교에서 5년을 채우고 떠나는 분들인데 둘 다 능력이 출중하시다.

올해 신상-2025년 새로이 함께 일하며 반품 불가한 모습을 선보인 사람은 신규교사 J선생님이시다. 신규답지 않게 선생님도 일을 너무 잘하신다. 아이들과 고군분투하는 모습마저 아름다웠다고 말씀드리고 쉽다.

칼마감상-공문이나 자료 제출에 있어 기한을 어기지 않는 철두철미한 사람은 C선생님이시다. C선생님은 말도 빠르시고, 일도 엄청 빠르시다. 나도 말이 빠른 편인데 난 나보다 말 빠른 사람 교직에서 처음 봤다.

상상이상-함께하며 알게 된 모습들이 매번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든든하고 매력적이었던 사람은 4학년 K선생님이시다. K선생님은 올해 부임해 오셨는데 금단 현상을 받은 L선생님 못지않은 입담가이다. 올해 결혼으로 품절남이 되시고, 최근에 테슬라 전기차를 사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전 성심당 아들이라는 소문이 학교에 돌고 있다.


이상 수상자 소개를 마치겠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는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보석 같은 선생님과 직원들이 많이 있다. 그들과 함께 했던 3년이란 시간은 내 교직에서 가장 따뜻했던 3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출 서류를 제출하며 4년에 걸친 장거리 출퇴근의 마침표를 찍는다. 누군가는 텅 빈 새벽 도로 위의 시간을 '고생'이라 불렀지만, 나는 그 길 끝에서 매일 '사람'을 만났다. 내 교직 15년 중 가장 뜨거웠던 3년. 상품도 없는 종이 한 장에 이토록 가슴이 벅찬 이유는, 그 속에 담긴 다정한 진심이 나의 고단했던 길 위를 모두 보상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2월은 받은 마음을 되돌려주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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