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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책으로 어떻게 환경교육을 하는가?

더워도 너무 덥다.

by 사차원 그녀

매달 아이들에게 1권의 책을 읽어주고 있다. 그야말로 온책 읽기이다. 3월부터 7월까지 아이들에게 총 5권의 책을 읽어주었다. 매달 1권의 책을 읽어야 하므로 진짜 신중하게 책을 고른다. 일단 내가 읽어보고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달의 계기 교육 내용이나 은근히 교육적이면 더더욱 좋다. 3월에는 행운이 구르는 속도, 4월에는 수일이와 수일이 5월에는 마지막 이벤트, 6월에는 특별한 학교의 최우수 선생님을 읽어주었다. 행운이 구르는 속도는 장애 이해 교육용으로 읽었고, 수일이와 수일이는 국어 교과서에 나왔는데 아이들이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다고 해서 읽어주었다. 수일이와 수일이는 2010년 작으로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다. 5월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며 책을 골랐고, 6월 책은 6.25 관련해서 민통선 근처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선정해 보았다.


아이들은 내가 책을 읽는 동안 귀로 듣기만 하면 된다. 그 사이 연습장을 꺼내서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해도 된다. 하지만 아무도 떠들지 않는다. 그게 무언의 약속이다. 책 읽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내가 나누어주는 붙임 종이에 간단히 소감을 쓴다. 많이 쓰나 적게 쓰나 아무 상관이 없다. 매번 쪽지를 읽고 나는 감탄을 하는데, 아이들은 책을 듣고 다양하고 많은 생각을 한다. 그래서 목이 아픈데도 책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걸지도.

기본 교과서 진도도 나가야 하고 학교 행사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아서 달에 1권 책을 읽어주는 것도 쉽지 않다. 아침 활동 시간은 아이들의 개인 독서 시간이므로 이 시간에 내가 책을 읽어주지는 않는다. 국어 시간에 15~20분가량 읽어준다. (국어가 주에 5시간이지만 매일 읽지는 못한다) 그러면 보통 1권의 책을 읽는데 2주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이번 달은 장편 동화를 골라서 거의 3주가량이 걸렸다.


7월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그냥 영화나 보면서 여름 방학을 맞이할까 했지만 올해도 기록적인 폭염에 벌써 전기 사용이 최고치를 찍었다는 뉴스를 보고 몇 년 전에 읽었던 블랙아웃이 떠올랐다. 블랙아웃은 대규모 정전을 말하며 책에서는 일주일 정도 정전이 이어진다. 이 상황에서도 정보와 재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은 전력과 물과 비상식량을 구한다. 문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일반 사람들이었다.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마트에 몰려가 마트를 터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극한 상황에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묘사가 잘 되어있다.


어린 시절 시골의 낡은 집은 태풍이 오거나 비바람이 세게 부는 날 가끔 정전되기도 했다. 그러면 양초를 켜고 밤을 보내곤 했다. 워낙 비와 어둠을 좋아했던 나는 어두컴컴한 밤이 싫지 않았다. 다행히 날이 밝으면 곧바로 복구되었고 생활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근데 책 속에 나오는 것처럼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면 과연 나는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전기 에너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기는 국산이지만 에너지는 수입입니다.’ 이 낡은 멘트를 나는 또 써먹었다. 그리고 누진세 이야기도 해주었다. 여름 방학 동안 에어컨 빵빵 틀고 전기 펑펑 쓰면 고지서 폭탄을 받게 될 거라는 경고와 함께. 신·재생 에너지 이야기도 했더니 태양열 패널이 할머니 집에 있다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미술 시간에는 에너지 절약 포스터를 그렸다. 우리 반 아이가 부채 그림을 그리길래 “너 에어컨 대신 부채로 버틸 수 있어?”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실천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었다. 다 된 포스터는 복도 창에 붙여서 게시했다. 지나가는 4~6학년 아이들이 볼 수 있게 말이다. 부족함 없이 모든 게 풍족한 아이들에게 이런 블랙아웃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우리는 이번 폭염을 현명하게 넘길 수 있을까? 오늘도 일기예보는 전국이 폭염경보란다.


<블랙아웃을 읽은 아이들의 소감>

동민이와 동희는 부모님이 안 계셔도 엄청 잘 있었다. 우리에게도 정전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깐 미리 비상식량 같은 통조림과 물, 라면을 챙겨놓고 돈도 모아놔야겠다.(현금) 이 책을 읽고 더 전기를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K양)

블랙아웃이 되면 학교도 안 가고 좋을 줄 알았더니 완전 지옥인 거 같아 보였다. 그래도 마지막에 전기가 다시 들어오니 다행이었다. (K군)

결말이 너무 아쉽고 어떤 깡패한테 각목으로 맞은 게 너무 슬프다. (L군)

엄마, 아빠가 중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고 꿋꿋하게 생활하는 동희와 동민이를 본받아야겠다. 그리고 집에 비상식량, 물, 그리고 돈도 모아야겠다. 우리나라에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너무 슬플 것 같다.(S 양)

집에 둘 밖에 남지 않았는데 잘 견뎌낸 것이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2탄도 나왔으면 좋겠고, 엄마 아빠도 언제 돌아오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블랙아웃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무섭다. 그럼 너무 깜깜할 것 같다. 책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C 양)

난 새끼고양이가 죽는 그 장면이 슬펐다. 나도 집사였는데, 약을 구하지 못해 설탕물을 먹고 죽었다. (P군)

책의 주인공 동민이가 너무 불쌍했다. 그리고 진수네 엄마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만약 블랙아웃이 된다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더위에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P양)

우리나라도 이제 곧 전기가 없어질 생각을 하니 아빠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태양열이 있는 할머니집에 가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J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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