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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만 보는 여자

감자와 동거 100일째 되던 날

by 사차원 그녀

우리 학교는 환경교육의 하나로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올봄 학년별로 다양한 작물을 심었다. 1학년은 방울토마토, 2학년은 오이와 당근, 3학년은 방울토마토와 가지, 4학년은 강낭콩과 오이고추, 5, 6학년은 감자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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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우리 반은 학교 텃밭에 감자를 두 고랑 심었다. 감자를 심기 전 아이들과 나는 교실에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다른 농부들이 씨감자를 심는 것을 찾아보았다. 여러 개의 영상을 보니 절단면이 위로 가도, 아래로 향해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씨감자를 심었다. 씨감자를 심고 나서 갑자기 날씨가 봄 같지 않게 추웠는데 무사히 줄기가 나오더니 어린잎이 나왔다. 5월 중순이 되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에 양분이 가면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다길래 아이들은 밭에 드나들면서 꽃을 땄다. 감자를 캘 무렵에는 감자 캐는 방법을 영상으로 찾아보았다. 분명 어릴 때 시골에서 감자를 십 년가량 키워본 것 같은데, 말로 설명하자니 어설프고 그랬는데,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영상을 보여주면 빨리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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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토요일은 감자 캐기 좋은 하지였다. 남편과 나는 고성에 놀러 갔는데, 놀러 간 숙소에서도 나는 일기예보만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온통 감자 생각만 했다. 썩기 전에 감자 캐야 하는데. 월요일 새벽에는 악몽을 꿨다. 학교 텃밭 일을 도와주시는 여사님께서 감자 줄기를 다 뽑아버려서 휑한 고랑을 보며 나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여사님의 본업은 교내 청소인데, 청소보다 농사에 더 열성을 보이신다. 작년에는 감자 캘 시기를 놓쳐서 싹 난 감자를 수확한 아픔이 있다.(작년에는 감자를 조금 늦게 심었는데, 여사님은 7월 첫 주까지 계속 기다리라고 하시고, 계속된 비에 땅속 감자는 싹을 틔우고, 일이 그렇게 되었다) 아무튼, 올해 감자는 내가 원하는 날짜에 아이들과 내 손으로 수확할 테니 도와주지 마시라 말씀드렸다. 약간 서운해하셨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 힘으로 해내고 말겠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아이들과 목요일에 감자를 캐기로 약속했다. 목장갑은 운동회 때 줄다리기하고 수거해 둔 것을 재사용하기로 했고, 감자를 담아갈 비닐봉지나 종이봉투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화요일 온종일 비가 내렸고, 밤에는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나는 밤새 감자 걱정을 했다.


수요일 아침, 또 흐렸다.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고 가는데 DJ가 오늘 비가 살짝 내리고 종일 흐릴 거라고 알려주었다. 근데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하늘이 맑아지는 것이 아닌가. 역시 일기예보는 틀려야 맛이지. 전담 시간에 텃밭에 가서 감자 상태를 확인했다. 줄기는 꽤 많이 시든 상태였고, 살짝 땅속에 손을 넣어보니 꽤 큼직한 감자가 잡혔다. 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수요일 저녁, 운동을 다녀오며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종이 상자를 3개 주워 왔다.

“이거 뭐꼬”

“내일 감자 캐서 담을 거다”

“내 장담컨대 박스 반도 못 채운다.”

“으이씨.”

이 남편 씨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말겠다.

그 사이 나의 걱정 회로는 쉼 없이 돌아간다.

‘아, 땅이 질퍽질퍽해서 아이들 운동화가 더러워지면 어쩌지?’

‘우리 학교에 뱀 자주 나오는데, 내일 감자 캐는데 뱀 나오는 거 아니겠지.’

‘내일 감자 캔 박스를 어디로 옮겨서, 감자를 분배하지. 우리 학교는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감자를 몇 개씩 나눠줘야 할까? 많이 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야 하나? 감자를 서로 많이 가져가겠다고 싸우는 건 아니겠지.’


목요일 점심을 먹고 5교시에 감자를 캐러 갔다. 아이들은 감자밭에 가자마자 급흥분 상태가 되었고, 주먹만 한 감자를 캘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감자를 다 캤는데 호미질 더 할 거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말린다고 혼났다. 우리 반 삼총사는 그 사이 메추리알처럼 작은 감자를 주워서는 벽에 던지는 장난을 쳐 나의 혈압을 상승시켰다.

교장 선생님은 나오지도 않으셨고, 우리는 텃밭 옆 공터에서 감자를 나눠 담았다. 우리는 2박스 넘게 감자를 수확했다. 아이들은 서로 큰 감자를 가져가겠다고 눈치싸움을 벌였고, 우리 반 금쪽이는 감자를 들어서 여자아이들에게 네 얼굴 닮았다며 비아냥거렸다. 아이들은 감자를 7개 정도씩 챙겼다. 교실에 돌아온 나는 파김치가 되었고, 감자를 무사히 캤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몰려왔다. (오전에 옆 반 감자 캘 때도 같이 가서 일을 거들었다) 무사히 퇴근한 나는 몸살감기약을 먹고 9시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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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묻는다.

“여보, 이제 감자 다 캤는데 무슨 걱정해? 너무 궁금하다.”

“알려줘?”

“응.”

“다음 주에 1, 2학년이 인근 농원으로 블루베리 수확 체험 가거든. 그날 비가 올까 봐 걱정이야. 내가 업무 담당자라서 날짜 내가 예약했는데, 그날 비 오면 미안하잖아.”

“당신은 일기예보만 보고 있냐? 진짜 걱정도 팔자다”

“근데, 진짜 나 매일 아침 일기예보만 봐.”

“진짜, 골치 아프다. 일기예보 말고 남편 얼굴이나 좀 봐라.”

다음 주 수요일까지 아마 나는 남편 얼굴보다 일기예보를 더 많이 확인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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