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한 글씨 속에 담긴 꼿꼿한 사랑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에게 겨울방학 숙제가 뭐냐고 물으니 그냥 있단다. 알아서 할 거라는데, 분명 알아서 안 할 것을 아는 엄마는 다이소에 가서 일기장이나 사 오라며 닦달한다. '나 때는 말이지' 하며 방학 숙제를 참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우리 아들은 그런 열정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그때는 학원도 없었으니 방학 내내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놀기만 했다. 일기는 개학 일주일 전부터 부랴부랴 썼던 것 같은데, 지금처럼 한 달 전 날씨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항상 날씨 칸을 채우는 게 고민이었다. 심지어 아들은 주 1회 일기 한 편이 숙제라지만, 나는 거의 30일 치 일기를 한꺼번에 쓰느라 팔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 시어머니께서 동치미를 가져가라고 하셔서 시댁에 갔다. 그 바쁜 와중에 어머니는 또 호박을 긁고 새알심까지 직접 빚어 호박죽을 끓여 놓으셨으니 황송하기 짝이 없었다. 방에는 이웃 할머니께서 놀러 와 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상을 치우고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챙기는데, 거실 한쪽 조그만 상 위에 놓인 달력 종이를 발견했다. 쓰레기인가 싶어 정리하려다 내용을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어머니가 마을회관에서 무료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신 건 작년 봄부터라고 하셨다. 찬장에 있는 수료증을 보니 벌써 2회기 수업을 들으신 모양이다. 여기도 학교처럼 방학이 있는지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는데, 그걸 이렇게 열심히 하고 계셨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물으니 어머니께서는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셨다고 했다. 어머니의 숙제를 사진으로 찍으니, 어머니는 뭘 부끄럽게 이런 걸 찍느냐며 수줍게 웃으셨다. 며느리 앞에서 쑥스러우신지 본인은 글은 잘 읽는데 쓰는 게 매번 헷갈린다고 하셨다. 나는 편지를 정말 잘 쓰셨다며 칭찬해 드렸다. 짧은 문장 몇 줄에도 어머니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번듯한 공책도 없으신지 달력을 찢어 편지를 쓰신 게 죄송할 따름이었다. 다음에 올 때는 연필과 필통, 지우개, 그리고 네모 칸 공책과 예쁜 편지지까지 사다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배움에 늦은 나이란 없다. 나는 누구보다 어머니의 배움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