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오버페이스 하지 않겠습니다.
남편과 딸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나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면 난 또 어김없이 거실(정확하게 안방과 아들 방 사이 보일러 선이 지나가는 그 모서리)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31일에 방학식을 하고 온 나는 너무나 피곤했고, 세밑 한파 소식에 집에 남기로 했다. 남편이 보내준 해돋이 사진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나는 꿀잠을 잤기에 아쉬움이 없다.
지난달 글쓰기 모임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고, 올해는 우리끼리 책이라도 한 권 만들어보자며 마음을 모았다. (돈 주고 파는 책 아님) 그리고 신입 멤버도 한 명 온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1월 글쓰기 주제는 새해 계획과 다짐이다. 물론 계획을 하지 않았다면, 계획이 없는 이유를 쓰면 된다.
결혼 15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3박 4일 일정으로 가까운 일본을 다녀오기로 했다. 가족 여행 전에 나는 10년 된 동학년 선생님들과 베트남 우정 여행을 예약해서 1월 말에는 또 3박 5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사이 남편은 군대 동기들과 라오스 여행을 다녀와도 되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아! 남편은 5년 차 자영업자이다. 그리고 지난 6월 본인만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가족 여행에 라오스 여행까지 다녀오면 10일 가까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경제적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남편이 너무나 가고 싶어 하는 뜻을 내비쳤기에 ‘다음에 가면 안 될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꼴깍 삼키고 다녀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사무실 월세며 기본으로 나가는 돈에, 2월에 설까지 끼여 있으니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주말 남편과 점심을 먹고 공원에 가서 가볍게 러닝을 한 후, 의령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뭔가 이야기를 하다가, 1월에 10일가량 일을 쉬면 가게 월세는 낼 수 있는 거냐며 걱정 섞인 말이 튀어나왔고, 그걸 들은 남편은 이런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항상 일을 하다 보면 달마다 버는 돈이 다른데, 이번 달에 조금 적게 벌면 또 그다음 달에는 조금 더 벌어서 1년 평균으로 보면 수익이 일정하게 유지되더라는 것이었다. 본인이 지금 조바심내서, 1월에 열흘 쉴 거니까 야근을 매일 하거나 휴일까지 반납하며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육체적으로 더 빨리 소진될 텐데, 그러면 본인이 60살까지 돈을 벌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말이다.
두 칸짜리 낡은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는 항상 좋은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2012년 투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돈을 번 지 얼마 안 되어 결혼을 했고 모아둔 돈도 없었다. 남편이 가진 5,000만 원에 시댁에서 보태주신 돈을 조금 합해서 8,500만 원짜리 전셋집에서 2년을 살았다. 거기서 2년 가까이 살다가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둘째가 태어나고 25평(실평수 23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25년도 넘은 복도식 아파트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하루는 학교 티타임 시간에 동학년 남자 선생님이 새로 입주하신 신축 아파트 이야기를 하셨다. 우연히 그 선생님이 10년 전 우리 아파트에 사셨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내가 어디 사는지 이 선생님은 모르고 계셨다.) 옆에 있던 마흔이 넘은 여자 선생님이 그런 낡은 복도식 아파트에 어떻게 사냐며 말을 했고, 당황한 나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날 나는 집에 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우리 힘으로, 우리 돈만으로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갈 수 없다는 걸 남편과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드디어 우리는 대출의 힘을 빌리기로 했고, 집값의 반 이상 대출을 받아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일까? 월급을 받으면 항상 기준량을 정해두고 소비를 극도로 제한하기 시작한 게. 물론 아이들 학원비며 식비 및 생활비는 절약되는 부분이 아니니까 나의 개인적인 소비를 다 줄였다. 그리고 불필요한 물건 구매도 하지 않았다.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래서 매달 플러스를 만들며 경제생활을 해왔고, 남편도 착실하게 대출금을 갚아 몇 년 사이 우리는 대출금의 반 이상을 갚았다.
이번 달에만 해외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와야 하는 나는 그동안 모아둔 비상금을 탈탈 털었고, 필요한 물건을 준비한다고 인터넷 쇼핑도 엄청나게 했다. 이번 달은 적자 중에서도 ‘막대한 적자’ 상황이다. 그런데 남편 말처럼 또 열심히 벌어서 모으면 되니까, 눈앞의 현실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는 나를 짓눌렀던 저축의 부담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수년간 ‘흑자 경제’를 유지하느라 정작 내가 포기하며 살았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이제는 남편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는 말은 삼가려 한다. 남편과 건강하게 나이 들어 성대한 회혼식을 치르는 것이 나의 새로운 꿈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장수의 최대 적이고, 우리는 지금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행복한 완주를 위해 꼭 필요한 ‘페이스 조절’을 하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