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죽여 버릴 거야!
※주의: 실제 살인 사건 일어나지 않음.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우리 집 남매가 서랍장에 있던 트리를 꺼내서 거실에 장식을 하고 있었다. 시키는 공부는 절대 하지 않으면서 이런 건 어찌나 알아서 스스로 하는지 참. 저녁을 먹고 거실을 서성이던 나는 트리에 걸린 주머니에서 아이들이 써넣은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순진한 영혼들.
당시 4학년이던 딸아이는 산타는 없다며 엄마 아빠가 선물 준비해서 주는 거 다 안다면서 제법 큰 애처럼 굴더니만 결국에는 자기도 그 주머니에 편지를 써넣고 말았다. 딸아이의 희망 선물은 크게 특별한 것도 아니라서 우리가 충분히 사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강력한 편지 덕분에 딸의 편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휴대폰 휴대폰 노래를 부르던 아들은 기어코 산타에게 휴대폰을 달라며 간절한 편지를 쓰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했으나, 강력한 나의 반대에 핸드폰을 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대신 내가 아들에게 산타인 척 휴대폰을 선물로 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아들의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뭐 조금 섭섭해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알았다.
(나름 엄마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자필이 아닌 워드 작업을 하는 치밀함까지. ㅋㅋㅋ)
사건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아침형 인간인 아들은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같이 일어났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트리 주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혹시 산타가 우리 집 현관문 비번 때문에 못 들어왔을까 봐 현관문을 열고 밖까지 살펴보는 치밀함을 보였다. 우리가 준비한 아이들의 선물은 간단한 보드게임과 장난감이었다. 딸은 별 감흥이 없었고, 아들은 약간 실망한 눈빛을 보였다. 아들이 산타의 편지를 못 찾기에 나는 또 발연기를 해야 했다. “어어어! 주머니에 이거 뭐야. 이XX에게. 어 아들 산타가 보낸 편지가 있네.” 편지를 건네받은 아들은 들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갔다. 잠시 후, 대성통곡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놀라 방으로 들어갔다. 화가 난 아들은 산타의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우겨버렸다. 그리고는 거칠게 한마디 토해내고야 마는데. “산타 죽여 버릴 거야! 엉엉엉” 동생이 안쓰러운 딸아이는 엄마가 쓴 편지네 하며 아들을 달랬지만 아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 보기 싫어. 나가!" 그날 아들은 점심도 굶어가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산타의 답장은 너무 팩트 위주였고, 아들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들이 노래 노래 부르던 그 핸드폰을 올 12월에 드디어 샀다. 그리고 핸드폰에 정신 팔린 아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머리를 쥐어박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틸걸 그랬어! 잉잉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