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산타에게 암살 경고 편지를 쓰다.

※주의: 실제 살인사건 일어나지 않아요.

by 사차원 그녀

22일 저녁 크리스마스 연휴의 시작이지만 영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 반 VIP께서 방학식 당일. 모두가 행복한 이날까지 나의 영혼을 탈탈 터는 바람에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 네 덕분에 급식으로 나온 팥죽도 한술 뜨지 못했다. 따흐~ 나 팥죽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저녁을 먹고 아들에게 이번에는 산타에게 편지를 안 쓰냐고 물었더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다리란다. 그러고는 내 핸드폰으로 검색할 게 있다며 핸드폰을 가져갔다. 본인 방에서 꼼지락꼼지락 하더니 종이 쪼가리를 가져와서는 그 트리 주머니에 쏙 넣고 들어간다. 아하! 저게 편지인가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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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잠들길 기다려, 몰래 아들의 편지를 읽었다. 이 녀석 1년 전의 일을 하나도 잊지 않았군. 이번에도 선물을 안 주면 산타를 암살하겠다니, 도대체 이런 말은 어디서 주워들은 거지? 게임을 자꾸자꾸 하더니만 애가 계속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엄마는 마음이 아프다.


토요일 아침 선물을 사러 몰래 이마트로 출동한다. 아들이 희망한 선물은 5만 원가량 하는 레고였다. 뭐 이 정도쯤이야. 딸은 희망 선물이 없었으므로 그냥 내 맘대로 고르기로 한다. 진열대를 쭉 둘러보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귀멸의 칼날’ 퍼즐 1000 피스를 골라 담았다. 귀멸의 칼날은 딸이 좋아하는 일본 만화의 이름쯤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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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무실로 선물을 들고 온 나는 포장지를 사러 인근 문구점으로 간다. 반가운 사장님을 만나 신세 한탄을 한다.

“사장님, 제가 언제까지 이 산타 노릇해야 합니까?”

“어이구, 행복한 줄 알아. 지금이야 몇만 원짜리 선물만 해주면 다지. 나봐. 다 큰 애들 뒤치다꺼리한다고 등골이 휘어.”


사장님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포장지를 사 온 나는 정성껏 선물을 포장한다. 환경을 생각해서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이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눈 딱 감고 넘어가기로 한다. 포장을 마친 나는 남편 컴퓨터로 또 산타의 답장을 쓴다. 전생에 나는 산타 비서쯤 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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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우리 가족은 전남 목포로 1박 2일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들은 여행 내내 산타가 우리 집에 안 올까 봐 노심초사했고, 못된 엄마는 네가 이번 해 착한 일을 한 게 없는데 김칫국 마시지 말라며 아들의 기를 팍팍 꺾어주었다. 목포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선물을 찾기 시작했다. 눈이 4개(안경알 포함)인 아들은 트리 주위만 찾다가 없는 줄 알고 실망했다. 사실 선물은 트리 뒤 커튼 뒤에 숨겨 놓았는데 말이다. 역시 내가 한 수 위!


“아, 오랜만에 집에 왔더니 어둡다. 커튼 좀 걷어야겠다.”

이제 소파에서 잘만 보면 선물이 보인다.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던 아들이 쓱 고개를 돌리더니 선물을 발견하고 콩콩 뛰며 환호성을 지른다.

“야호~. 선물이잖아. 이번에는 진짜 내가 원하는 선물을 정확하게 갖고 왔네.”

“편지도 읽어봐. 뭐라고 써놓았는지.”


큰 애가 이거 딱 봐도 엄마가 쓴 거라며 내 눈치를 봤지만 난 천상 연기자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자기 선물은 산타가 뭔 생각으로 고른 거냐며 한숨을 푹푹 쉰다.

“와, 산타. 지린다. 이거 퍼즐 1000 피스 나보고 맞추라고. 완전 노가다네.”

딸, 미안해. 엄마는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좀 그래. 내년에는 갖고 싶은 걸 정확하게 편지로 쓰길 바라.


제 느낌상 아들은 산타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만 선물이 갖고 싶어서 양심을 팔고 있는 거 같습니다. 과연 아들은 내년에도 산타에게 편지를 쓰게 될까요? 과연 내년에도 저는 산타의 답장을 대신 쓰게 될까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추리극은 언제쯤 끝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