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술을 가르친 엄마
제가 회초리 맞겠습니다.
지난 주말 남편 계모임이 있어 온 가족이 사천으로 놀러 갔습니다. 바다 풍경이 멋진 펜션에서 행복한 1박 2일을 보냈죠. 일요일 아침에는 새해에도 보지 못한 일출을 보며 뒤늦게 새해 소망을 빌어 봅니다. 아침 산책하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 우연히 마을 방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구정을 맞이하여 수협에서 조합원께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게 주였습니다. 회원당 멸치 1박스, 배 1 상자, 돼지 뒷다리 1개. 남편 친구들과 저는 입이 쩍 벌어졌고, 여기로 전입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했지요.
자! 그럼 토요일 저녁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요? 네. 맞습니다. 우리는 숯불에 장어와 목살을 구워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남자들은 번갈아 가며 야외에서 고기를 굽고 여자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30대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남편 친구들도 다들 40이 넘어서인지 이전만큼 먹지를 못했습니다. 머리카락도 식욕도 차츰 잃어가는 그들이 안타깝습니다.
3층에서 한참 게임에 빠져있던 아들이 배가 고픈지 내려와 삼촌 이모 사이에 앉습니다. 아들은 절대 고기에 쌈장을 찍지 않습니다. 쌈도 싸지 않습니다. 그냥 고기와 밥을 함께 먹을 뿐입니다. 목이 말랐던 아들은 음료수를 요구했습니다. 옆에 앉은 삼촌이 소주잔에 사이다를 가득 채워 줍니다. 자기도 같이 건배하자고 하네요. 그러고는 사이다를 꿀꺽꿀꺽 넘기고 캬~ 소리와 함께 소주잔을 바닥에 탁 내려놓습니다. 옆에 앉은 이모, 삼촌은 너무 웃긴다며 박장대소를 합니다. 저는 나름 흐뭇했습니다. 역시 날 닮아 연기에 재능이 있단 말이지. 저 손가락 디테일 보이시죠. 거기다가 눈까지 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일요일 저녁, 아들과 소주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들 어제 술 먹는 연기를 아주 실감 나게 잘하던데, 뭘 보고 배운 거야?”
“엄마한테 배웠지.”
“엥? 엄마 술 안 먹잖아?”
“엄마가 구독하는 유튜브 김 oo 채널에서 삼촌들이 만날 술 먹잖아.”
아~ 머리를 한 대 때려 맞은 느낌이네요. 교사인 제가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흡연 예방 교육, 음주 예방 교육 이런 거 하면서 정작 우리 아들에게는 음주 권장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 일요일 저녁마다 하루의 피로를 달래려 침대에 누워서 영상을 보고 있으면 살며시 아들이 다가와 그 영상을 같이 보곤 했는데 이렇게 빨리 습득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면서 분명 술을 마셔 보고 싶다는 생각도 품었을 게 분명합니다. 아들 엄마가 정말 생각이 짧았구나!
술도 안 먹는 제가 김 oo 영상에 빠지게 된 이유는 아주 슬퍼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2022년. 통영으로 시작된 장거리 출퇴근과 새로운 근무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기 일 준비한다고 바쁘고, 저는 저대로 힘들고 말할 곳도 없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씻기만 해도 저녁 9시가 되었습니다. 몸이 녹아내린다는 표현으로밖에 설명이 안 되던 그 시기 저를 버티게 해 준 건 유튜브 영상이었습니다. ‘다들 너무 수고했어요. 내일도 우리 잘 버텨봐요. 항상 응원합니다. 좋은 날 올 거예요.’ 앵무새처럼 두 아저씨는 영상에서 저를 응원하고 격려해 줬습니다. 이제 겨우겨우 9만까지 왔는데, 한 삼촌은 초고속 결혼에 곧 있으면 아기까지 태어날 건데 제가 여기서 배신하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절대 아들과 함께 이 영상을 시청하지 않겠습니다. 몰래 숨어서 보겠습니다. 아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엄마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