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시작은 수학학원 등록과 함께
나는 초, 중, 고 동안 한 번도 사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고2의 시작과 함께 친구 수학 학원을 한번 기웃거려 본 적이 있긴 하다. 처음 가본 학원에서 원장은 매주 쪽지 시험을 쳐서 아이들의 실력을 쑥쑥 키워주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다달이 보는 모의고사도 지겨웠던 나는 이 말을 듣고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학원비 때문이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농번기를 빼고 아버지는 투잡을 뛰고 계셨다. 산림조합에서 하는 벌초와 벌목작업 같은 일이었는데, 하루 종일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거나 예초기를 매고 풀을 베는 고된 작업을 아버지는 거의 10년 가까이하셨다. 다달이 보내주는 방세와 책값과 약간의 용돈까지 받으며 나는 더 욕심을 낼 수 없었다.
2월 초, 딸아이는 수학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서 하는 수학 방과후교실에 다니고 있었기에 그 수업을 계속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공부가 제대로 안 된다며 학원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본인의 친한 친구가 다니는 거기 그 학원. 내가 생각하기에 공부보다는 친구 영향이 크다고 추측했고, 좀 더 생각을 해보자며 결정을 미루어 두었다. 종업식을 하고 설이 지나서도 계속 학원 이야기를 꺼내기에 함께 가보기로 했다. 다른 집은 학원 가자고 졸라도 안 가겠다고 생떼를 쓴다는데 우리 집 녀석은 제 발로 가겠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원에 전화를 걸어 원장선생님과 상담 시간을 잡고 아이와 낯선 그곳으로 발을 디뎠다.
딸아이가 진단 테스트용 수학시험을 보는 동안, 나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가 생각하는 아이의 수준 및 기대치, 그리고 학원에서 하는 교재와 학원비 설명도 들었다. 나는 우리 딸이 크게 수학에 흥미가 없고, 잘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선행 학습보다는 학교 진도에 맞춰 6학년 내용을 이해만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다. 딸아이의 시험 점수는 50점. 사실 나는 매우 부끄러웠다. 가장 최근에 배운 5학년 2학기 수학 교과 내용으로 시험을 봤는데 50점이라니. 선생님은 틀린 문제를 아이에게 재설명하고 풀어보게 하셨다. 그러고는 4학년 문제집을 들고 와 풀어보게도 하셨다. 딸아이는 특히 소수와 분수 문제에 취약점을 들어냈고, 선생님은 6학년 진도와 함께 그 전 학년에서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 개념들도 함께 보충하는 문제집도 1권 더 해주겠다고 말했다. 학원비는 주 4회 1시간 수업으로 월에 18만 원이다.
여드름 때문에 일주일 만에 다시 피부과를 방문했다. 7일간 약을 먹어서 그런지 여드름이 조금 줄었다. 하지만 약을 먹고 편두통과 구토 증상을 느낀 나는 약을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대신 연고를 처방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선생님이 추가로 병원에서 하는 여드름 관리를 받고 싶냐고 말을 꺼냈는데 순간 학원비가 머릿속을 슝하고 지나갔다. 일주일 만에 어떻게 사람 마음이 이렇게 바뀌는 거지? 지난주까지만 해도 빨리 내 볼에 난 여드름을 몽땅 없앨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의사 선생님께 연고를 발라보고 진전이 없으면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황급히 병원을 빠져나왔다.
어린 시절 엄마의 화장대에서 엄마의 화장품이 하나둘 사라지던 날이 떠올랐다. 우리 3남매가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동안 엄마는 더 이상 뾰족구두를 사지도 새 옷을 사지도 않았다. 비도 보슬보슬 내리고 그냥 서글펐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도 엄마가 되어가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