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빠 닮아서 토크가 너무 긴 딸.
2월 봄방학 동안 딸의 아침 기상 시간은 아침, 아침이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였습니다. 3월 4일 월요일. 대한민국 엄마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쳤던 바로 그날, 딸아이가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나 샤워합니다. 이야, 역시 개학이 무섭네요. 3월에 개강하는 대학생만 개강(very strong)한 게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날 개학을 했습니다. 첫날부터 6교시를 하느라 비 맞은 신문지처럼 너덜너덜 돼서 집에 왔는데 말이지요. 학원 다녀온 딸아이의 수다가 끝이 없습니다. 일단 처음 간 수학 학원 이야기부터 합니다. 문제집이 없어서 선생님 책 복사해서 수업했다고 합니다. 이 학원은 학생이 교재를 직접 사서 학원에 가져가야 합니다. 학원 선생님은 학부모인 나에게 문제집 구매 관련 문자를 보냈다고 착각하셨나 본데 저는 받은 게 없습니다. 뭐 학원 선생님도 개강 준비로 바쁘셨겠지요? 3월 첫 주는 서로 빡빡하게 굴지 맙시다. 수학 수업은 따라갈 만하냐고 물었더니 할만하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자기는 이때까지 공부를 안 해서 못 한 거지 공부를 못해서 못 한 게 아니랍니다. 아이고. 그러시군요. 다행입니다. 그리고는 밤 10시에 문제집 들고나와서 다시 설명해달라는 딸 덕분에 저는 이날 11시에 잠을 잤습니다. 저 오늘 7교시쯤 했나요?
담임 선생님은 나이가 60쯤 되신 할아버지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좋냐고 물으니 별로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마음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너희 선생님은 교직 경력이 최소 30년 가까이 되셨으니 그동안 수많은 학생을 지도하셨을 것이고 분명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일게 분명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특기는 악기 연주라고 하시네요. 손에 소금을 들고 다니시는데 점심을 먹고 선생님이 그걸 교실에서 불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선생님의 현란한 연주에 옆 반 애들까지 우르르 몰려와서 1곡 더! 1곡 더! 외쳤다고 합니다. 연예인이 따로 없네요. 앞으로 이 선생님의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딸 반에는 전교 회장인 김 XX이란 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딸 생각으로는 그 아이는 특별한 공략도 없이 말발로 회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근데 저는 말발도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거 날 교실에서 방송으로 후보자들의 공약 발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화면이 나가는 방송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아이가 이런 멘트를 날렸다고 합니다. ‘이런 방송사고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2024년 전교 회장 김 XX입니다.’ 6학년이 이 정도라니 회장감 아닙니까? 아무튼 자기는 회장이 싫어서 교실에서 말 한마디도 안 한답니다. 5학년 시절 같이 교내 독서동아리를 했는데 다른 친구들이 본인과 김 XX이가 사귀는 거 아니냐 놀린 이후부터 쭉 그랬답니다.
딸아이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가 사라진 지 오늘로 2주 차, 숙제부터 먼저 다 해놓고 컴퓨터를 하라는 제 말을 무시한 딸아이에게 최후통첩으로 모니터를 압수했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아들, 남편, 제가 외출한 사이 몰래 모니터를 연결해 사용한 간 큰 딸입니다. 오늘은 금요일 기분 좋은 엄마의 비위를 맞춥니다.
“엄마, XX(동생) 이도 2학기에 학원 보낼 거라고 했지?”
“아마, 그건 왜 물어?”
“내가 우리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말이지. 수학 학원은 서X탑 학원, 영어는 X선생, XX어학원이 가장 빡세게 공부시킨대. 거기로 보내.”
“너도 거기로 옮길래?”
“아니 그건 아니고, 근데 엄마 도대체 컴퓨터는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나 요즘 수학 공부 엄청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버텼어. 딱 1달이야. 1달만 기다려. 곧 너도 사람이 될 거야.”
과연 딸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켜 모니터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