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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수상한 외출

너 도대체 어디를 가니?

by 사차원 그녀

퇴근이 늦어서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딸아이가 집에 계속 늦게 들어온다는 거요. 수학 학원 마치고 피아노 학원 마치고 오면 6시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6시 30분이면 바람과 같이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외출 이후에 저의 전화는 무조건 씹습니다. 저번 주는 가지 말라고 말렸더니 새 학기 준비물을 사야 한다길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번 주도 계속 외출합니다. 뭔 일이 있나 뒤를 밟을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체력이 딸리는 엄마는 포기합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수상한 흔적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연습장도 훑어보고, 혹시 누가 보낸 협박편지는 없는지 쓰레기통도 뒤져 보지만 쓰레기통에는 불량식품 껍질만 가득합니다. 계속 방에서 수군수군 통화를 하는데 꼭 친구와 통화할 때 문을 잠그는 바람에 엿듣는 것도 실패했습니다. 나름대로 방음이 잘 되는 방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도 어김없이 늦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8시에 귀가라니요. 화가 난 저는 7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저녁밥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랬더니 화요일에는 아예 나가지를 않았지요. 저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왜 6시 30분만 되면 신데렐라처럼 크록스를 신고 뛰쳐나가는지.


식탁에 앉은 딸과 저는 대화를 나눴고 딸의 외출 사유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지만 오늘 글을 위해 남겨보겠습니다. 딸 포함 친한 친구 4명이 있습니다. 저희 딸을 제외한 3명의 친구가 학원을 많이 다니는 모양인데 7시 정도에 마친다고 합니다. 그럼 제 딸은 6시 30분쯤 집을 나와 3명의 친구 학원 앞으로 픽업을 갑니다. 첫 번째 학원 앞에서 두 명이 되고, 두 번째 학원 앞에서 세 명이 되고, 세 번째 학원 앞에서 드디어 네 명이 됩니다. 완전체로 모인 G4 언니들은 아파트 놀이터를 전전하며 1시간 가까이 수다를 떤다고 합니다. 그중 한 명은 8시에 또 학원을 가야 해서 7시 30분쯤 사라진다고 합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 매일 만나냐고 물어보니, 6학년 들어서 다 반이 찢어져 학교에서는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하네요. 그다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냐고 물었더니 학원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너도 그 학원 다녀 보는 게 어떻겠냐며 말을 이었더니, 학원이 얼마나 힘든지 선생님이 이상한지 이런 이야기만 한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도움이 안 되네요. 그리고 딸아이 말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엄마, 우리 4명 같이 있을 때 엄마만 전화해.!”

“다른 집 엄마들은 왜 전화 안 해?”

“다른 집 엄마들도 전화 오긴 오지. 가끔 1번씩. 맛있는 거 했다고 밥 먹으러 오라고. 근데 엄마처럼 받을 때까지 집요하게 전화 걸진 않아.!”

“걱정되니까 그렇지, 8시면 완전 밤인데 겁도 없이 돌아다니니 그렇지.”

“뭔 걱정이야. 난 다 컸어. 나쁜 짓 안 해. 그리고 내 친구 2명은 벌써 학원에서 중학교 1학년 영어 배워. 공부도 잘한다고. 엄마가 좋아하는 모범생”

“모범생 친구와 가까이해서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걱정되니까. 큰길로 다니고 조심해야 한다.”


놀이터에서 1시간 동안 수다를 떨던 G4 언니들은 또 의리는 있어서 서로의 집을 바래다준다고 합니다. 그것도 돌아가면서요. 그래서 만날 딸아이는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귀가가 늦는 거지요. 방안에 혼자 틀어박혀 배 깔고 누워서 만화책 보고 폰 보는 아들은 너무 안 나가서 걱정이고, 딸아이는 항상 집 탈출을 꿈꾸고 있으니 중간이 없습니다. 오늘은 아파트 단지 꽃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놀다 딸아이는 또 8시에 귀가를 했습니다. 가족보다 친구가 더 좋을 시기라지만 요즘 좀 너무 한 것 같네요.


“엄마, 안녕? 나 밥 먹으러 딱 시간 맞춰 들어왔어. 앗싸 오늘은 아빠보다 내가 더 일찍 왔다.”

“그래 착하다. 빨리 밥 먹고 수학 숙제를 해보겠니? 월요일처럼 10시에 나 부르면 너 물어버린다.”

“네. 마미.”


저는 딸처럼 같이 놀 친구가 없으니 남편 들어오면 동네 밤마실 좀 나가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44 모녀’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 감사드려요. 3월이라 학교도 집도 너무 바쁩니다. 한숨 쉬고 곧 새로운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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