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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Apr 09. 2024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

제가 걸어 다니는 걱정 인형입니다.

출장이 잡혔다. 텃밭 교육학교 담당자 연수다. 뭐야 창원까지 가야 하네. 

농촌 출신인 나야 농사 이론이며 실기며 빠삭하지만 그래도 오라니까 가야 한다. 

자료집계 시스템으로 연수 명단에 내 이름을 써넣어 제출하고 나니 걱정이 앞선다. 

어떡하냐? 나 어떻게 창원까지 가지.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걱정을 털어놓는다. 

“여보, 나 4월 12일에 출장 가야 하는데.”

“가면 되지. 무슨 문제 있어?”

“그게, 말이지 창원이야. 한 번도 나 혼자 운전해서 창원 가본 적 없잖아. 걱정된다.”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여보, 나는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줘도 헤매. 근데 처음 가는 길이야.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모든 길은 통해. 그냥 찍고 가봐.”

“그러지 말고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일요일에 당신이랑 한 번 가보면 어때? 시간 뺄 수 있을까?”

“응, 아직 2주 남았으니까, 이번 주말은 엄마 일 도와드리고, 다음 주 일요일에 갔다 오자.”

“고마워, 여보.”     


주말에 저는 하동 시댁에 가서 미친 듯이 일을 했습니다. 20킬로짜리 퇴비를 번쩍 들어 옮겼고요. 남편의 입에 발린 소리도 혀 깨물고 참으면서 웃어넘겼습니다. 남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도로 주행 안 간다고 어깃장이라도 놓으면 큰일이니 제가 수그리고 들어가야죠.      


도로 주행을 앞둔 토요일 저녁 또 걱정이 생겼습니다. 진주에서 출발해서 가는 길이랑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출발해서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게 문제였죠. 네이버 길 찾기 기능을 보고 또 보고 내린 결론은 학교에서 무조건 통과하게 되어있는 고성에서 출발하자는 거였죠. 그래서 일단 고성의 외딴 마을회관을 경로에 찍고 거기까지 도착한 다음 최종목적지인 경남교육연수원을 찍어서 가기로 정했습니다. 휴우~ 벌써 지치네요.   

   

일요일 새벽부터 남편을 깨웠습니다. 저는 차 밀리는 것도 상당히 싫어하기 때문에 아침 6시에 일어나서 6시 30분에 나갔습니다. 생각보다 길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근데 고성에서 또 길을 한번 놓쳐서 1바퀴 다시 돌았습니다. 그래서 통행료 1200원을 과소비했지요. 마창대교. 마창대교가 언제 나올지 걱정하며 가는데 드디어 마창대교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분명 무료일 거라 말했지만 통행료 2500원을 내고 지나갔습니다. 새로운 길이라 무서웠던 것보다 큰 다리를 지나는데 바람 소리도 들리고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시내로 들어섰더니 차선이 왕복 8차선 정도 보이네요. 워낙 새벽같이 출발해서인지 길에 차가 거의 없습니다. 정식으로 출장 가는 날은 이번 주 금요일인데 이렇게 차가 없을 리 만무한데 계산 미스였네요.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입니다. 밥은 진주에 가서 먹기로 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습니다. 


“여보,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

“새삼스럽게 무슨 그런 질문을. 30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잖아?”

“나 같은 사람들 분명 많이 있겠지?”

“당연하지, 전 세계적으로 엄청 많을 거야. 그리고 그런 사람과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엄청 많겠지?”

“당신도 힘들겠다. 이런 나 때문에.”

“난 괜찮아. 당신이 오늘 안 왔으면 출장 가는 날까지 더 걱정했을 거 아니야. 그냥 끙끙대고 걱정하는 거 지켜보는 것보다 그냥 오늘처럼 따라와서 걱정을 덜어준 게 차라리 낫네”     


무사히 진주에 도착했고요. 남편에게 맛난 아침밥을 사주었습니다. 낮잠을 한숨 자고 집 안 청소를 시작합니다. 장바구니에 담긴 물통을 남편이 가리킵니다. 이 물통들은 며칠 전 아파트에 갑자기 단수가 되었을 때 남편이 가게에서 길러온 것들입니다. 


“이제 이 물통 물 다 비워도 되겠지?”

“아, 혹시 갑자기 또 단수가 될지 모르니까 당분간 버리지 말고 보관하는 게 어때?”

“그래, 일단 둘게. 당신이 버리고 싶을 때 버려.” 

역시 포기가 빠른 남편입니다.      


저도 가끔 제가 이해가 안 될 때가 너무 많은데요.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30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거든요. 한 50년만 더 이렇게 살다가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건강하게 죽을게요! 혹시 저보다 더 심한 걱정 인형들 있으시면 제보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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