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걸어 다니는 걱정 인형입니다.
출장이 잡혔다. 텃밭 교육학교 담당자 연수다. 뭐야 창원까지 가야 하네.
농촌 출신인 나야 농사 이론이며 실기며 빠삭하지만 그래도 오라니까 가야 한다.
자료집계 시스템으로 연수 명단에 내 이름을 써넣어 제출하고 나니 걱정이 앞선다.
어떡하냐? 나 어떻게 창원까지 가지.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걱정을 털어놓는다.
“여보, 나 4월 12일에 출장 가야 하는데.”
“가면 되지. 무슨 문제 있어?”
“그게, 말이지 창원이야. 한 번도 나 혼자 운전해서 창원 가본 적 없잖아. 걱정된다.”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여보, 나는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줘도 헤매. 근데 처음 가는 길이야.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모든 길은 통해. 그냥 찍고 가봐.”
“그러지 말고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일요일에 당신이랑 한 번 가보면 어때? 시간 뺄 수 있을까?”
“응, 아직 2주 남았으니까, 이번 주말은 엄마 일 도와드리고, 다음 주 일요일에 갔다 오자.”
“고마워, 여보.”
주말에 저는 하동 시댁에 가서 미친 듯이 일을 했습니다. 20킬로짜리 퇴비를 번쩍 들어 옮겼고요. 남편의 입에 발린 소리도 혀 깨물고 참으면서 웃어넘겼습니다. 남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도로 주행 안 간다고 어깃장이라도 놓으면 큰일이니 제가 수그리고 들어가야죠.
도로 주행을 앞둔 토요일 저녁 또 걱정이 생겼습니다. 진주에서 출발해서 가는 길이랑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출발해서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게 문제였죠. 네이버 길 찾기 기능을 보고 또 보고 내린 결론은 학교에서 무조건 통과하게 되어있는 고성에서 출발하자는 거였죠. 그래서 일단 고성의 외딴 마을회관을 경로에 찍고 거기까지 도착한 다음 최종목적지인 경남교육연수원을 찍어서 가기로 정했습니다. 휴우~ 벌써 지치네요.
일요일 새벽부터 남편을 깨웠습니다. 저는 차 밀리는 것도 상당히 싫어하기 때문에 아침 6시에 일어나서 6시 30분에 나갔습니다. 생각보다 길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근데 고성에서 또 길을 한번 놓쳐서 1바퀴 다시 돌았습니다. 그래서 통행료 1200원을 과소비했지요. 마창대교. 마창대교가 언제 나올지 걱정하며 가는데 드디어 마창대교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분명 무료일 거라 말했지만 통행료 2500원을 내고 지나갔습니다. 새로운 길이라 무서웠던 것보다 큰 다리를 지나는데 바람 소리도 들리고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시내로 들어섰더니 차선이 왕복 8차선 정도 보이네요. 워낙 새벽같이 출발해서인지 길에 차가 거의 없습니다. 정식으로 출장 가는 날은 이번 주 금요일인데 이렇게 차가 없을 리 만무한데 계산 미스였네요.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입니다. 밥은 진주에 가서 먹기로 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습니다.
“여보,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
“새삼스럽게 무슨 그런 질문을. 30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잖아?”
“나 같은 사람들 분명 많이 있겠지?”
“당연하지, 전 세계적으로 엄청 많을 거야. 그리고 그런 사람과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엄청 많겠지?”
“당신도 힘들겠다. 이런 나 때문에.”
“난 괜찮아. 당신이 오늘 안 왔으면 출장 가는 날까지 더 걱정했을 거 아니야. 그냥 끙끙대고 걱정하는 거 지켜보는 것보다 그냥 오늘처럼 따라와서 걱정을 덜어준 게 차라리 낫네”
무사히 진주에 도착했고요. 남편에게 맛난 아침밥을 사주었습니다. 낮잠을 한숨 자고 집 안 청소를 시작합니다. 장바구니에 담긴 물통을 남편이 가리킵니다. 이 물통들은 며칠 전 아파트에 갑자기 단수가 되었을 때 남편이 가게에서 길러온 것들입니다.
“이제 이 물통 물 다 비워도 되겠지?”
“아, 혹시 갑자기 또 단수가 될지 모르니까 당분간 버리지 말고 보관하는 게 어때?”
“그래, 일단 둘게. 당신이 버리고 싶을 때 버려.”
역시 포기가 빠른 남편입니다.
저도 가끔 제가 이해가 안 될 때가 너무 많은데요.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30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거든요. 한 50년만 더 이렇게 살다가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건강하게 죽을게요! 혹시 저보다 더 심한 걱정 인형들 있으시면 제보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