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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Mar 30. 2024

딸, 깔롱지기다 사고 치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토요일 아침, 쓰레기통에서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다. 머리가 엄청나게 엉켜있는 롤빗. 근데 빗 모양이 좀 이상하다. 빗살(이 부분의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도 다 아작이 나있다. 어제 하루 종일 학부모 공개수업에 저녁 동창회 모임까지 하얗게 불태운 나는 더 이상의 궁금증도 추리도 포기한다.


아침밥을 차려 주고, 씻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딸이 파우더 룸으로 슬며시 들어와서 말을 건다.

“엄마, 어제 우리 선생님께 전화 안 왔어?”
 “아니, 전화 안 왔는데, 너 뭐 학교에서 사고 쳤니? 설마 학교폭력?”

“그건 아니고. 어제 아침에 학교에 지각했어.”

“왜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말이지.......”     


평소의 우리 집 아침 풍경을 살펴보면, 가장 부지런한 제가 6시 55분에 출근을 합니다. 아파트 내 헬스장에서 새벽 운동하던 남편은 6시 40분쯤 집에 옵니다. 그리고 씻고 아이들 아침을 간단히 준비합니다. 싱크대 정리 후 남편은 8시 무렵 출근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8시 10분 무렵 아들과 딸이 차례대로 나갑니다. 예상대로라면 딸은 지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딸이 지각했다니 이상합니다.     


한창 사춘기인 딸은 옷이며 외모 단장에 공을 들입니다. 매일 아침 앞머리에 뽕을 넣기 위해 구르프(헤어롤)를 맙니다. 이게 다 구르프 때문입니다. 그게 어디로 숨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안보입니다. 할 수 없이 화장대에 있던 롤빗으로 앞머리를 말았죠. 그런데 평소와 달리 계속 머리가 감기는 느낌이 들고 빗이 풀리지 않고, 동생도 먼저 갔고 한참을 끙끙대던 딸아이는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겁니다.

“선생님, 저 지금 머리카락이 빗에 엉켜서 못 빼고 있어요. 저 지각할 것 같아요”

“아니, 빗에 머리가 왜 엉켰어?”

“그게요. 오늘 구르프를 잃어버려서  롤빗을 썼는데 머리가 빗에 세게 감겼어요.”

“그래? 부모님 안 계시니?”

“엄마는 학교 갔고요. 아빠도 출근했어요. 선생님 제가 최선을 다해 풀어볼게요.”

“그래, 얼른 오너라.”     


선생님과의 통화를 마치고 딸은 핸드폰으로 유튜브 검색을 시작합니다. ‘엉킨 머리 푸는 법’을 검색했더니 다양한 영상이 나옵니다. 우선 선인장 같은 빗살을 가위로 다 자릅니다. 다음 추천 팁 머리를 미끄럽게 만들기 위해 헤어오일, 린스까지 듬뿍 발랐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요.      


9시쯤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옵니다.

“00아, 아직도 못 빼고 있나? 일단 그 상태로 학교 와봐라. 여자 선생님들 많이 계시니 풀어달라고 부탁해 보자.”

“선생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 빨리 풀어볼게요.”     


더 이상 해결방법을 찾기 못한 딸아이는 마지막 방법인 머리카락 자르기를 선택합니다. 가위를 들고 조금씩 조금씩 머리를 잘라가며 빗을 구출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 딸아이가 오자마자 친구들이 박장대소를 합니다. 왜냐고요?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은 바람에 반 친구들 전체가 통화 내용을 함께 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딸 담임선생님은 개그감이 상당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물론 딸은 기분 나쁠 수도 있었지만, 한 달 만에 담임선생님 팬이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딸은 평소 앞머리가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오늘 가위질로 약간 깻잎 머리처럼 변신했습니다. 친구들은 뭐가 달라진 거냐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그리고 이 사건 이후 딸의 별명은 ‘롤 00 (00은 딸아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 엄마가 곧 네 생일에 안 엉키는 고급 롤빗 생일 선물로 사 줄 테니 기다려라. 근데 빗 가격이 2만 원이 넘는데 이거 실화냐? 그리고 급박하게 앞머리 자른 거 치고 너무 잘 잘랐다. 미용실 이모가 보면 칭찬하실 것 같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려 노력한 너의 끈기 또한 칭찬한다. 살다 보면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오늘을 교훈 삼아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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