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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에 목숨 거는 아내

이래도 안 할 거야?

by 사차원 그녀

바야흐로 봄은 축제의 계절입니다. 일요일이라 남편과 함께 의령 미나리 축제에 가 보았습니다. 미나리도 2박스나 사고 삼겹살과 미나리 전에 미나리 비빔밥까지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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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갑자기 축제 사회자가 1시에 노래자랑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공짜를 좋아하는 저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죠. 저에겐 남편이 있거든요. 20대에 미친 자신감 하나로 엄마 아빠의 결혼 반대도 이겨낸 내 남자. 불렀다 하면 노래방기기 100점을 받는 그 남자가 제 남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 오늘 노래자랑의 주인공은 남편뿐일 거라 생각을 했고, 남편 설득에 들어갑니다.


1단계는 남편 띄워주기 작전입니다.

“여보, 우리 집에서 당신이 가장 노래를 잘하잖아. 그리고 설 전에 계 모임에서 놀러 갔던 날 기억하지? 그때 당신 노래 불러서 100점 나왔잖아. 그거 100점 받는 거 아무나 못 하는 일이야. 당신이 오늘 꼭 노래자랑에 나갔으면 좋겠어.”

“아니. 안 하고 싶은데.”


2단계는 경품으로 꼬시기 작전입니다.

“여보, 오늘 우리 돈으로 미나리를 2박스나 샀잖아. 근데 노래자랑인데 참여자한테 아무 선물도 안 줄까? 최소 미나리 1박스 이상은 주겠지. 경품으로 미나리 받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자랑하면 좋잖아.”

“뭐, 더 나눠줄 때 있어? 근데 1인 1박스라서 우리 더 못 사는데.”

“그러니까, 노래 불러서 더 타야 한다는 거지.”

“우리가 2박스 산 걸로 나눠 먹자. 이것도 양이 엄청 많은데. 나 안 하고 싶어”


3단계 남편 비위 맞추기 작전입니다.

“여보, 오늘 노래자랑 나가기만 해. 내가 일주일 동안 당신이 시키는 거 다할게. 응, 응?”

“우리 애들도 다 컸고, 요새 집안일 할 것도 없는데. 나 안 할래.”


평소의 남편은 제가 이 정도로 조르면 웬만하면 넘어가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아무리 꼬셔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적나라하게 저의 속내를 내비칩니다.

“여보, 솔직하게 말할게. 나 브런치에 글 써야 하는데 요즘 일상이 너무 평범해. 오늘 당신이 노래자랑 나가서 경품 타면 정말 멋진 글이 한편 나올 것 같은데. 협조 좀 하면 안 될까?”

“요즘, 노래방을 안 가서 노래 연습을 못했어. 그리고 내 전공은 발라드잖아.”

“당신, 나 처음 만났을 때 지인들이랑 간 노래방에서 노라조 <슈퍼맨> 불렀던 거 기억 안 나? 그렇게 신나게 노래를 불러 놓고는 말이지. 계속 핑계 대지 마”


저의 공격에 밀리던 남편이 최후의 반격을 가합니다.

“노래자랑은 인기상이 으뜸이지. 이 분위기에 내 발라드는 너무 쳐져서 안돼. 당신이 나가서 불러. 내가 뒤에서 백댄서 할게.”

“장난쳐? 당신 나 음치에 박치인 거 알아 몰라? 나를 아주 비웃음거리로 만들겠다는 거야. 치사하다. 치사해. 그냥 집에 가!”


감정 상한 우리 부부는 집에 가서 낮잠이나 자자며 차에 올라탑니다. 이 눈치 없는 남편이 차에 타자마자 노래를 틀어서 노래 연습을 합니다. 화가 나서 버튼을 팍 눌러 꺼버렸습니다. 안 할 거면서 노래 연습은 왜 하는 거야. 딸한테 전화해서 둘이 코인 노래방을 가겠다고요? 됐거든요. 벌써 버스 지나갔습니다. 치사하다. 치사해. 왕 치사해. 미스터트롯도 아니고 전국노래자랑도 아니고 꼴랑 사람 200-300명 모인 축제장에서 노래 자랑하는데 연습을 따지다니 당신이 가수냐? 다음 주 당신 마라톤 대회에 응원 가나 봐라!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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