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과 '하늘의 이치'

오늘을 살아가는 공동 상속자들의 슬기로운 학문 탐구

by 융중복룡


어떤 일이든 그 일에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은 점점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당을 쓸고 먼지를 터는 단순한 일이라 하더라도 같은 동작에서 일정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대체 이 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일을 극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려서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철학의 영역을 드나들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고원한 원리를 다루는 철학에서 시작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단순한 행동의 영역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그 공부가 헛된 공부가 된다. 조선 시대의 유명한 선비인 남명 조식(曺植, 1501 ~ 1572) 선생은 이러한 점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면, 생활 속의 작은 일들은 몸소 실천할 줄 모르면서 입으로만 천리(하늘의 이치)를 말해 명성이나 얻고 남을 속이려 한다."고 경계하였다. 선생이 "손으로는 조그만 일도 할 줄 모르면서 입으로만 하늘의 이치에 대해 말하고들 있지만, 그 행실을 살펴보면 도리어 무식한 사람만 못하다."고 당시 지식인들을 따끔하게 꼬집은 것은, 당시 사회가 성리학이라고 하는 철학적 기반 위에 성립된 사회였고, 따라서 조선의 선비들 중에 고원한 철학적 원리(하늘의 이치)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현실의 영역에 작은 일부터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까닭이 아닌가 한다.


단순한 일을 하던 사람이라도 그 수준이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철학의 영역에 진입하게 되고, 철학을 말하던 사람이라도 일상 생활의 단순한 일에서 그 원리를 적용하고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공부는 입으로만 떠드는 헛된 공부인 것이다.


그러니 이 사소한 일상부터 바꾸지 못하는 철학이라면 개념 놀음에 지나지 않고, 그 안에서 깊은 의미와 더 높은 경지에의 진입을 체험하지 못하는 단순한 일상이란 역시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그 일의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 일에는 그렇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원리가 있다. 자기의 일에서 그 원리를 보고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철학자가 와도 그 사람에게 그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역량의 한계가 있고 주어진 시간에 한정이 있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신처럼 다 꿰뚫어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지니고 적성이 다 다른 것 아닐까? 이 모든 세계가 굴러가는 원리를 우주의 원리라고 한다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이 볼 수 있고 쓸 수 있는 원리를 나눠 받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우주가 물려 준 원리의 공동 상속자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과학자만이 우주의 진리를 밝혀내고, 종교가만이 신의 진리를 알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과 하등 다를 것 없는, 공동의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하나 하나 일이 돌아가는 원리들을, 그리고 그 너머에 숨겨진 철학적 진실들을 보고 쓸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낙망하고 포기해버린다면 우리는 그만큼의 우주를 잃어버린 게 되니, 어찌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하는 일이 결코 보잘 것 없는 일이 아니고, 내가 사는 삶이 이 우주가 굴러가는 원리와 하나가 되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글을 쓰든 요리를 하든 옷을 입든 방을 정리하든 빗자루로 마당을 쓸든 간에, 어떤 일에서라도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키워갈 수 있을 것 같다.


낙망하고 포기하면 또 어떤가.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속물처럼 내 이익, 내 쾌락만 보고 살았던 날들이 있으면 또 어떤가. 마음은 있었지만 표현에 서툴렀던 날들이었다면 또 어떤가. 지나간 날들이 아니던가. 오늘이 주어졌다는 건, 그리고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건, 지난 날과는 상관 없이 오늘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 수 있다고 삶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준 것일테니.


나라는 존재, 그리고 오늘이라는 선물, 이 곳이라는 무대.


힘들어했던 사람이라면 다시 시작해 볼 수 있고, 즐거웠던 사람이라면 오늘의 새로운 즐거움을 또한 펼칠 수 있는, 생명이 준 고귀한 매일 매일의 기회가 아닐까.


끝으로 남명 조식 선생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래로 사람의 일을 배운 다음, 위로 하늘의 이치에 통하는 것이 학문에 나아가는 올바른 순서이다. 사람의 일을 버리고 하늘의 이치만 말하는 것은 입에 발린 이치이고, 스스로를 돌이켜보지 않고 지식만 주워 모으는 것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다."